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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이 맡아온 상고심 사건 대부분은 상고법원으로 넘기고 대법원은 중요한 사건만 추려서 재판하도록 한다는 상고법원 설립 법안이 국회에 상정되어 있다. 상고법원 도입을 위한 법원조직법 등 6개 법안 개정안은 2014년 12월에 19일 전체 국회의원의 과반수인 168명의 서명으로 발의되었다.

대법원의 막강한 로비력과 함께 우리 국회의 대표적인 이미지인 정책능력 부재와 무대책 그리고 ‘힘센 곳에 본능적으로 따라가는 정신’ 혹은 시류에 영합하고 강자에 편승하는 밴드왜건(bandwagon) 현상이 동시에 증명되는 장면이다.

하지만 우리 국민은 헌법에 명시된바 최고법원인 대법원을 최종심으로 하는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다. 만약 ‘상고법원’이 만들어진다면 어떤 사람은 대법관한테 재판받고, 어떤 사람은 ‘상고법원’의 일반 판사한테 재판받게 되는데, 그 분류 기준이 지나치게 자의적이다.

대법관 신분이지만 실질적으로 재판을 담당하지 않는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장을 제외하면 우리나라 대법관은 12명에 지나지 않으며, 12명의 대법관이 모든 사건을 처리하고 있다. 2012년 현재 대법관 1인이 1년에 무려 30만1983건을 처리하고 있다. 당연히 그 과중한 업무량은 줄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뒤집어 생각해보면 대법관의 파워가 그만큼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간 우리 사회에서 법원의 문제는 “검찰권력” 문제에 가려져 상대적으로 노출되지 않았지만, “사법권력”이 이에 대한 효과적인 견제 시스템의 부재 속에서 갈수록 비대화하고 있어 주시해야 할 상황이다. 특히 소수의 대법관 정원으로 대법원의 과도한 집중과 특권화의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대법원 전경 (출처 : 경향DB)


고도의 복잡화와 전문화가 진행되는 현대사회에서 우리 법원의 정상화는 대법관의 대폭 증원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어떻게 12명의 대법관이 민형사라는 전통적인 분야를 넘어 행정, 재정, 사회, 노동, 특허 등 제 분야에 대한 전문적 판단을 내릴 수 있는지 조금만 고민해도 상식적인 답이 나오는 사안이다. 그런데 최고법원의 다양화 대신에 상고법원이라는 꼼수를 들고 나온 것에 다름 아니다.

독일에서 민사와 형사에 관한 상고심에 해당하는 연방(일반)대법원은 2014년 현재 128명의 대법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행정, 재정, 사회, 노동 등 다른 분야를 합하면 300명 정도를 유지하고 있다. 프랑스의 경우, 행정사건을 제외한 일반사건의 최고법원인 파기원은 129명의 대법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의 경우, 인구와 국토 면적을 감안할 때 대법관 수는 최소한 60명 정도의 규모가 타당할 것으로 생각한다.

미국이나 일본은 헌법재판소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연방대법원이 위헌법률 심판 등 헌법재판소 기능을 같이 수행함에 따라 “법령해석 통일의 기능”이 가장 강조되는 반면, 독일이나 프랑스처럼 헌법재판소가 별도로 존재하는 국가의 경우 대법원은 다수의 전문적 대법관에 의한 “권리구제의 기능”이 강조된다는 점을 덧붙인다.


소준섭 | 국회도서관 조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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