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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는 최근 몇 년간 시흥 캠퍼스 조성사업을 둘러싸고 심한 내홍을 겪고 있다. 서울대 학생들은 시흥캠퍼스 건설을 반대하면서 지난해 10월부터 올 3월까지 5개월에 걸쳐 서울대 역사상 가장 긴 본부 점거농성을 벌였다. 올 3월 초 학교 측이 학생들의 농성을 강제 해산했지만, 5월 초 학생들은 2차 본부 점거농성을 강행하는 등 갈등이 지속되었다.

이처럼 시흥캠퍼스 사업을 둘러싸고 서울대에서 갈등이 지속되고 있는 주요 이유는 관악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새로운 캠퍼스를 조성하는 것이 교육적, 학문적으로 필요하고 타당한지에 대한 충분한 검토와 공개적 논의 없이 시흥캠퍼스 사업이 졸속적으로 추진되고 있기 때문이다. 시흥캠퍼스 사업에 대한 학생들의 반발도 이러한 맥락에서 발생한 것이다. 하지만 시흥캠퍼스 사업의 문제점과 그 추진과정의 비민주성을 비판하던 학생들에 대해 서울대 본부는 진정성 있는 대화를 하기보다는 징계와 처벌을 앞세운 강압적 태도와 권위주의적 대응으로 일관했다. 지난해 10월부터 지속된 서울대 본부와 학생들 사이의 갈등 원인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여러 어려움을 겪은 끝에 지난 7월 초 서울대 본부와 농성 학생들 사이에 ‘서울대 시흥캠퍼스 문제 해결과 신뢰 회복을 위한 협의회’ 구성이 합의되고, 학생들은 본관 점거를 해제했다. 그러나 이후 대화과정에서 본부는 시흥캠퍼스 조성사업에 대한 학생들의 문제제기와 비판에 대해 책임 회피성 답변과 권위주의적 태도로 일관하여 진정한 대화를 어렵게 했다. 더구나 대화 기간 중에는 징계를 유보해 달라는 학생들의 요구를 외면하고 대화협의회에 참가한 학생들을 포함해 무려 12명의 학생에게 무기정학과 유기정학의 중징계를 내렸다.

대화협의회 구성을 위한 사전 논의과정에서, 성낙인 서울대 총장은 대화협의회가 구성되고 학생들의 본관 점거가 해제되면 학생들에 대한 형사고발을 취소하고 징계 최소화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중징계 처분을 내리고 말았다. 대화의 상대방을 징계해놓고 제대로 된 대화가 가능하겠는가. 결국 지난 8월 초 대화협의회는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한 채 끝나고 말았다.

서울대 본부의 학생들에 대한 중징계는 시흥캠퍼스 문제의 평화로운 해결을 어렵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그 부당함 때문에 학내외의 반발도 불러오고 있다. 지난 9월5일 학생들이 낸 징계처분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이 받아들였다. 학생들에 대한 서울대의 징계가 절차적 문제를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징계의 수위가 과도하게 높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로 인해 교육기관으로서 서울대의 명예는 큰 손상을 입게 되었다.

군사정권이 무너진 이래 서울대에서 이렇게 많은 학생이 중징계(무기정학 8명, 유기정학 4명)를 받은 일이 없다. 일부 지나친 언행이 있었을지 몰라도 농성 학생들의 행동은 어디까지나 대학다운 대학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지 맹목적이거나 파렴치한 불법 행위는 아니었다. 서울대 본부가 진정으로 학내의 갈등을 해결하고 싶다면, 지금이라도 학생들에 대한 부당한 징계를 철회해야 한다.

<박배균 | 서울대 교수·사범대 지리교육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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