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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다른 사람과 나누지 않고 혼자 다 갖는 게 ‘독점’,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듣지 않고 혼자 모든 일을 처리하는 게 ‘독재’, 다른 사람들은 다 틀렸고 자기 혼자만 옳다고 믿는 게 ‘독선’, 다른 형제 없이 하나뿐인 자식이 ‘독자’다. 그러니 ‘독립’이란 본래 주변에 다른 사람 없이 혼자만 서 있다는 뜻이다. 중국인들이 사용하는 중국어사전은 독립을 “혼자만 서 있음. 혹자는 남에게 의존하거나 예속되지 않는 관계를 가리킴”이라고 정의한다.

몇 해 전, 소규모 학술 세미나에 일본에서 번역의 역사를 전공하는 학자 한 사람이 참석했다. 어떤 사람이 그에게 물었다. “independence를 독립으로 번역한 이유가 뭡니까?” 사람을 허탈하게 만드는 대답이 돌아왔다. “지금 생각하면 자립으로 번역하는 게 나았을 텐데, 당시 일본인들은 한자의 미세한 뉘앙스 차이를 잘 몰랐던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모국어가 아니니까요.” 순간 중국인들이 그 번역어를 역수입해 간 이유는 무엇일까라는 의문이 들었으나, 그에게 묻지는 않았다. “혹시 다른 아시아 국가들은 다 엎드려 있는 상태에서 혼자만 일어서겠다는 의지가 작용하지는 않았을까?”라고 혼자 생각하고 말았다.

나는 일본인들이 만들어 중국으로 역수출한 번역어 중 최고의 걸작은 낭만(浪漫)이라고 생각한다. 굳이 글자 그대로 해석하자면 ‘물결이 이리저리 일렁임’ 정도 될 텐데, 일본인들이 romance에 상응하는 단어로 만들어낸 신조어였다. 이와 거의 비슷한 뜻을 가진 한자어로 풍류(風流)가 있었음에도 왜 굳이 신조어를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 단어는 한자 문화권 전체로 퍼져 나가 중국인 중에도 이 단어가 중국 고전에서 유래한 것인 줄 아는 사람이 많다.

일본인들이 유럽 세계와 조우하기 훨씬 전에 ‘성경’을 접했던 중국인들은 the God에게 천주(天主)라는 이름을 붙이는 데에는 별로 망설이지 않았다. 그들은 자기들과 다른 유럽인의 우주관은 용인했지만, 천하관의 차이는 어떻게 해도 극복할 수 없었다. 천주의 독생자에 상응하는 한자어 ‘천자(天子)’는 이미 세속에서 절대적 권능을 행사하는 황제의 몫이었다. 그들은 부득이 발음도 비슷하고 땅을 감독하는 자로 해석할 수도 있는 ‘기독(基督)’이나 발음만 비슷할 뿐 아무런 의미도 없는 ‘야소(耶蘇)’라는 단어를 만들어 대응시켰다.

얼마 전 한국 언론들이 미국 대통령 트럼프가 SNS에 쓴 짧은 문장을 줄줄이 오역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1주일에 10시간 이상씩 10년 넘게 영어 공부한 사람들이, 그것도 평균 수준 이상인 사람들이, 영어사전을 옆에 두고도 오역을 한다. 그러니 아무런 사전 지식도, 참고할 문헌도 없이 처음 외국어와 맞닥뜨린 사람들은 어땠을까?

최초의 번역은 자기들의 언어와 결합한 지식으로는 들여다볼 수 없는 혼돈의 세계와 교류하는 일이었다. 교류 수단을 얻기 위해서는 자기 문화 전체와 상대 문화 전체를 맞대면시켜야 했다. 둘 사이에서 일치하는 것들을 찾아 대응시키고, 비슷한 것이 있으면 변형시키며, 없는 것은 창조해야 하는 버거운 일이었다. 이 일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알려는 의지를 총동원해야 했으나, 그래도 완벽한 결과를 얻을 수는 없었다. 대통령, 장관, 목사처럼 격에 안 맞는 단어들이 만들어졌는가 하면, 가방, 구두, 돈가스처럼 상대도 모르고 자기들도 모르는 단어들까지 발명되었다.

유럽인들이 전 지구를 무대로 해상활동을 개시한 15세기 말부터, 일본과 중국에서는 유럽인들의 언어를 통해 유럽인들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본격화했다. 19세기 말에 이르러서야 서구세계와 접촉한 조선은 이 점에서도 후발 주자의 이점을 톡톡히 누렸다. 일본인과 중국인들이 대응시킨 단어들을 가져다 쓰기만 하면 되었으니. 그러나 한국 문화 전체를 놓고 보자면 결코 다행스러운 일이었다고는 할 수 없다. 번역할 기회를 잃은 탓에, 한국인들은 자기 문화 전체를 성찰하고 서구 문화 전반을 주체적으로 관찰할 기회도 잃었다.

19세기 말까지 유럽과 미국에서 유래한 신문물에 대한 한국인의 지식 세계는 중국 번역어와 일본 번역어의 공동 지배하에 있었으나, 20세기 이후에는 일본이 이에 대한 지배권마저 독점했다. 한국인들은 일본인들이 일본어로 번역한 글을 그대로 읽거나, 일본어를 한국어로 번역하는 가벼운 수고만 하면 되었다. 1980년대 초중반까지 100년 가까운 시간 동안, 한국인들은 별 문제의식 없이 이 편리함을 누렸다.

그런데 이 뒤로 일본 번역어를 매개로 한 간접 번역이 줄어들었다고 해서 번역어를 창조하려는 의지가 커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번역어 만들기를 포기하거나, 우리말의 ‘미세한 뉘앙스 차이’를 모른 채 번역어를 만들고는 억지로 유포시키려는 경향만 강해진 듯하다.

이런 현상을 잘 보여주는 단어가 근자에 횡행하는 ‘혐오’다. 우리말 어감으로는 ‘징그럽거나 끔찍하거나 더러워서 싫어함’에 해당할 텐데, 이 단어 하나에 증오, 분노, 불신, 공포, 멸시, 경시, 비하, 조롱, 심지어 숭배의 의미까지 다 구겨 넣는 게 당연한 일처럼 되었다. 일본과 중국에서는 혐오, 불신, 공포, 차별로 나누어 번역하는 단어들도, 한국에서는 ‘혐오’로 통일돼 있다. 같은 단어에 다른 뜻을 담다 보니 상호 이해의 폭이 넓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소통에 장애가 생긴다.

공자는 세상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말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했다. 같은 말에 다른 뜻을 담는 사람들이 모여 살면서 세상이 평화롭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게다가 자기 문화 전반에 대한 깊은 성찰 없이 남의 문화에서 탄생한 단어를 함부로 번역하는 것은, 자기 문화에 대한 무지를 심화하는 일이다.

국립국어원에서든 지식사회에서든, 올바른 번역어를 찾거나 만들기 위해 분발했으면 한다.

<전우용 |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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