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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학교 다니면서 교실에서 잠을 자지는 않았다. 밤에 잠을 충분히 잤을 뿐 아니라, 교실에서 잠을 자는 것을 학교 선생님들이 가만히 두지 않았다. 호통과 날아드는 분필 등 다양한 장치가 수업시간에 잠을 자거나 딴짓을 하는 것을 허락지 않았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비인간적인 인권유린이라고 해야 할까? 그래도 끊임없이 딴짓을 추구하기는 했다. 수업시간에 도시락을 까먹고 야한 책도 돌려 보았다. 한 반에 70명씩이나 시루의 콩나물처럼 바글바글했지만 젊음이 모여 있던 그곳에는 생기가 있었다. 기운들이 부딪쳐서 싸움도 일어나고 에어컨도 없는 교실에서 여름을 나면서 서로의 땀 냄새를 공유해야 하는 처지였지만 좀비들이 모인 것처럼 싸늘한 기운이 느껴지는 일은 거의 없었다. 공부든, 친구든, 아니면 딴짓이라도 재미난 일이 얼마나 많은데 학교에까지 와서 잠을 잘 시간이 없었다.

요즘, 고등학교 수업시간에 잠을 자지 않는 학생은 한 손으로 꼽을 정도라고 한다. 선생님들은 아무도 깨우지 않고 잠을 자지 않는 학생들만을 상대로 입시에 관련된 정보를 전달하고 있다고 한다. 학교에 다녀온 아이는 학교에서 하루에만 영화를 세 편이나 봤다고 한다.

교실은 이런 상황인데 교육과 관련된 정책은 입시와 관련된 이야기들만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도 공부를 하고 있는 아이들이라도 보호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지만 나는 여전히 관심 밖에 놓인, 재미와 의욕을 상실한 녀석들이 너무 걱정스럽다. 명문 대학교에 진학한 아이조차도 수업시간 내내 좀비처럼 앉아 있다가 시험 이야기만 나오면 눈을 반짝이며 급하게 휴대폰을 꺼내 교수가 칠판에 쓴 것을 허겁지겁 찍는다는 친구의 이야기에 등골이 서늘했다. 이들이 살아갈 사회가 혹여 지금의 고등학교 교실처럼 황량하지는 않을지, 걱정을 하고 있다.

출판 현장에서 일을 하면서, 교육 현장의 아이들을 깨우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 관심을 두고 있는 프로젝트가 몇 개 있다. 그중 하나는 재미없는 암기 과목으로 알려져 있는, 혹은 오해받고 있는 ‘역사’ 과목에서 가르치는 내용과 방법을 바꾸는 것이다. 역사란 무엇인가? 살아남은 과거의 기록 중에서도 중요하고 믿을 만한 기록을 골라 절차에 따라 검증해 현재적 관점에서 엮어내는 옛날이야기다. 지금껏 우리가 배워 온 역사는 단정적으로 서술되어 있고 일방적으로 객관적인 정보를 주는 것처럼 포장되어 있다. 교과서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재미를 담았다는 교양 역사서나 교양 만화도 예외는 없다. 거기에 효율적인 학습과 수월한 학습을 위해 정보의 양을 조절해 뼈대만 남기다 보니 역사책의 이야기들은 죽어 있다. 죽은 이야기를 우화 삼아 가르쳐 주려는 교훈은 왜 그렇게 많은지. 메시지가 내용을 압도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학문적으로 낡은 이야기와 과도한 메시지가 교사와 학생들을 잠재우기 일쑤다.

역사를 배워서 무엇을 할 것인가로 질문을 바꿔본다. 지금의 역사 수업에서, 역사책에서 배울 수 있는 사실들은 알아두면 좋지만 간단한 검색으로 확인할 수 있는 사실들이 너무 많다. 만약 역사학자라면 굵직한 사실들과 자잘한 사건들을 엮어 머릿속에 넣어 두는 것이 필요하겠지만 보통 사람이라면 역사 공부를 통해서 사실들을 암기해 그 지식을 자랑할 일은 별로 없다. 교실에서 교사와 학생들이 마치 스스로가 역사학자인 것처럼, 역사적 주제를 이해하고, 관련된 사료를 탐색하며, 잠정적인 결론을 내고 이야기를 만드는 작업을 경험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건조한 사료와 사실들에 살과 피를 주어 입체적인 이해를 주려 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시골 마을에서 조선시대 보건소를 발견했다고 하자. 이것은 같은 시기 서구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선진적인 기관이다. 실제로 발견된 것은 그 자리와 발굴된 도구 몇몇뿐이다. 이미 잘 알려진 조선시대의 진료소에서 갖추었던 장비를 이 자리에서 발견된 도구들과 섞어서 배치를 해 본다. 이제, 지리적으로 이 위치가 전국적인 행정망 속에서 어떤 위치였는지 파악하고 의료 네트워크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었을지 가늠해 본다. 이 과정에서 탐구, 분석, 결론을 내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다.        

주어진 사료와 사실들을 두고 비판적으로 판단할 능력을 키우면 역사를 왜곡하거나 역사를 이용해서 대중을 동원하는 비극에 저항할 수 있는 시민을 키워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무엇보다도 머리와 함께 손발을 움직여야 가능한 능동적인 수업 과정을 통해 아이들을 무기력에서 건져내고 싶다. 이것만으로 될 일은 아니지만, 여러 방향에서 다양한 시도를 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주일우 | 이음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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