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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국민연금 가입내역 안내서를 받았다. 향후 받게 될 ‘예상연금월액’은 현재가치 기준 71만4000원이었다. “작년보다 좀 올랐네!” 우리 부부는 마주 보고 씁쓸히 웃었다.

친절하게도, 안내서에는 노후에 필요한 적정생활비가 나와 있다. 본인 기준 월 145만원, 부부 기준 월 237만원이다. 당장 내년도 최저임금을 적용해보아도 시간당 7530원, 월 157만3770원이니, 우리집 예상연금월액은 이리 보나 저리 보나 어림없는 숫자인가 보다.

지켜야 할 전제와 조건도 있다. 현재 내고 있는 수준의 보험료를 만 60세까지 중단 없이 납부해야 하며 지급은 만 64세부터 받을 수 있다. 만약 공단에서 만들어준 시나리오대로 살아간다고 가정하면, 은퇴 후 벌이도 없고 연금도 없는 3년간을 어떻게든 버텨내야 하는 셈이다.

은퇴 후의 삶은 ‘제도권 안에서 살아온 사람’인지, ‘제도권 밖에서 살아온 사람’인지에 따라 크게 갈린다. 제도권에서 안정된 고용으로 정년까지 쭉 일하는 사람들은 평생을 보장받는다. 차근차근 연금을 붓고 은퇴 후에는 매달 적정연금을 받을 터이다. 마치 찬비, 찬바람을 막아주는 우산 또는 온실 속에서 보호받는 것과 같다.

한편 제도권 밖에 있는 사람들은 들판에서 살아가는 야인과 같다. 동일노동을 하더라도 기간제 계약으로 끊어서 한다. 소득이 있을 때는 연금을 붓다가 소득이 끊기면 붓지 못하는 일이 여러번 반복된다. 예상연금액이 적어질 수밖에 없다. 제도권 사람들이 육아휴직을 하거나 자기계발을 위해 안식년을 갈 때, 제도권 밖의 사람들은 그들의 대체인력이 되어 기간제 노동을 한다. 누군가 휴직할 때 누군가는 임시 취직하며, 누군가 일터로 복귀할 때 누군가는 그마저 실직한다. 이들에겐 정년도 없지만 은퇴도 없다. 제도권에서라면 진즉 은퇴했을 나이에 여전히 일자리를 찾아 불안정한 노동을 이어간다.

그나마 일자리를 얻을 수 있다면 다행이다. 지하철 실버택배를 하고 있는 74세 노인의 하루를 취재한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하루 평균 두어 건을 한다. 그나마 공치는 날도 있다. 교통비는 ‘시니어패스’로 면제가 되지만 식비와 통신비는 자기부담이다. 다치기라도 하거나 배달물이 손상이라도 되면 낭패다. 한달 내내 일하고 버는 돈이 50만원을 넘기기 쉽지 않다. 노인이 적게 버는 것은 정당한가? 성별, 인종별, 연령별 임금격차에 관한 문제제기다. 몇 해 전 ‘동일임금의 날(Equal Pay Day)’ 벨기에 본부는 ‘만족(satisfaction)’이라는 풍자 영상을 만들었다. 영상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대개 60대에서 70대의 여자로서 드릴을 들고 콘크리트 벽에 못을 박거나 전기톱으로 목재를 자르거나 공사장에서 브레이커를 쥐고 아스팔트 깨는 일을 한다. 동일노동에 적은 임금을 받으면서도 이들은 연신 ‘만족’을 외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제도권 안과 밖을 두고 발생하는 연금격차는 정당한가? 공무원연금은 해마다 적자를 세금으로 메우고 있다. 누가 낸 세금일까? 제도권 내에서 모은 돈으로 부족할 때에는 제도권 밖에서 거둔 돈을 서슴없이 끌어다 쓴다. 하지만 제도권 밖의 사람들은 정작 자신들의 부족한 노후연금에 대해서는 은퇴도 없는 저가의 노동으로 각자도생 메워나가고 있다.

최근 기간제교사 정규직화 여부를 둘러싸고 첨예한 갈등이 벌어졌었다. 거대한 진입장벽 앞에서 울부짖는 사람들이 보인다. 얼마전 신임 대법원장 청문회에선 재산신고액 8억6000만원을 놓고 ‘경제적 무능’이 아니냐는 질문이 있었다. 질문을 주고받은 그들은 과연 얼마짜리 예상연금월액을 통보받고 있는지 갑자기 몹시 궁금해진다.

직업을 목숨에 비유하자면 입각한 사람들 중엔 목숨이 두 개인 분들이 많다. 교수자리 하나는 확보해 두고서 다른 목숨을 하나 더 얻은 셈이다. 이런 분들이 한 개의 목숨조차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사람들의 불안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왜요? 대체 뭐가 불안하다는 겁니까?”

‘선한 포도원 주인의 비유’라는 이야기가 있다. 포도원 주인은 이른 아침에 나가 한 데나리온의 품삯을 주기로 하고 일꾼을 구한다. 아홉시, 열두시… 오후 다섯시에도 나가 “아무도 우리에게 일을 주지 않아 이러고 있습니다”라며 할일 없이 있는 사람들을 일꾼으로 구한다. 날이 저물자 이른 아침에 온 사람에게도, 나중에 온 사람에게도 똑같이 한 데나리온의 품삯을 나눠준다.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우리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정당한 지분이 있다. 제도권 안에서도 밖에서도 차별 없는 동등한 권리와 품삯이 보장되어야 하고 우리 사회가 그런 합의를 이루는 날이 곧 오리라고, 나는 오늘도 과격한 꿈을 꾼다.

<김현정 | 서울특별시동부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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