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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선과 악, 이기와 이타가 공존하는 유전적 키메라(genetic chimera)다. 그러면 사람과 집단이 어느 때는 선을 더 행하고, 어느 때는 악을 더 지향하는가. 변수는 공감, 의미, 시스템, 규율과 법, 수행, 이 다섯 가지다. 인간은 거울신경세포를 통하여 타자의 고통에 공감하며 그를 구원한다. 의미의 존재인 인간은 진리와 정의, 무한과 같은 거창한 것에서 사랑하는 이의 행복이나 풀 한 포기에 이르기까지 의미를 좇아 순례를 하고, 때로는 그 의미를 위하여 기꺼이 목숨을 바치기도 한다. 선한 자에게 보상하는 시스템이 잘 발달한 사회일수록 선행은 늘어난다. 개인의 수행을 제외하면, 집단의 차원에서 선을 키우고 악을 제한하는 마지막 보루는 법이다.

윤 일병 사건이나 세월호 대참사에서 보듯 지금 한국 사회는 이 다섯 가지가 모두 악마성을 증대하는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체제와 극도의 경쟁, 그를 정당화하는 담론과 교육 속에서 한국인의 공감능력은 현저히 저하하고, 참다운 의미들은 사라지고 나쁜 의미들만 시민의 머리를 지배하고 있다. 교육과 수행을 통하여 영성과 착한 인성을 키우고 내 안에서 선의 꽃을 피우는 일도 힘들어졌다. 사회시스템은 선한 자들이 ‘루저’가 되고 손해를 보도록 짜여 있고, 박근혜 정권은 이를 극단화하고 있다. 법만 바로 서도 되는데, 법은 공정성을 상실했고, 사법부는 자본과 정권의 마름으로 전락하였다.

이 상황에서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는 지난 12월3일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을 기소하였다. 선거 당시 고승덕 후보에게 미 영주권 문제를 해명하라는 기자회견을 한 것을 문제 삼은 것이다. 하지만, 후보 및 그 자녀의 영주권 문제는 국적 있는 교육을 책임져야 하는 교육감 후보에게 매우 중요한 사안이며, 국민은 선거 과정에서 자신이 찍을 후보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알 권리가 있다. 당시 신뢰도가 높은 ‘뉴스타파’ 기자의 트위터를 비롯하여 사회관계망서비스(SNS)상에서 고 후보의 영주권 문제가 논란거리였다. 이에 이 의혹에 대해 해명할 것을 요구한 것은 선거 과정에서 반드시 행해져야 하는 후보 검증작업의 일환이다. 나중에 고 후보의 자녀가 미국 시민권이 있지만 고 후보 자신은 영주권이 없다는 사실을 안 뒤에는 조 교육감은 이를 더 이상 문제 삼지 않았다.

박원순 서울시장과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17일 오전 서울시청에서 서울기와 서울시교육청간 교육협력사업 '글로벌 교육혁신도시 서울선언'을 공동발표를 한뒤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출처 : 경향DB)


이 때문에 당시 선거관리위원회 또한 ‘주의경고’로 마무리한 사안이었다. 검찰이 공소시효 만료를 하루 앞두고서 별다른 문제가 없는 조 교육감을 기소한 것은 공정한 법적 판단이 아니라 진보적인 교육 정책에 발목을 잡으려는 저의가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필자는 조 교육감 후보 선거운동본부의 선대본부장을 맡아 선거를 총괄하였다. 단돈 1원도 투명하고 깨끗하게 쓰고, 네거티브도 하지 말고 정정당당하게 정책대결에 몰두하자고 천명하였고 고집스럽게 이를 밀고 나갔다. 해방 이후 가장 깨끗한 선대본부였다고 자부한다. 그럼에도 검찰이 선한 후보와 선대본부에 대하여 기소의 칼날을 휘두른 것은 기소권의 남용이 아닌가. 공정성을 상실한 법집행은 폭력이자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임을 인식하고, 선의 꽃밭에 물을 주는 일에 함께 동참할 것을 권한다.


이도흠 | 한양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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