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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이 없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정서를 담고 있는 춤 말이다. 승자독식사회 혹은 피로사회라고 불리는 지금 이 땅의 생로병사를 보고 겪으며 만들어진 자기 내면 속 희로애락을 드러내는 몸짓 말이다. 특히 뭇사람과 함께 손 잡고 추는 춤을 찾아볼 수가 없다.

춤(dance)의 어원은 산스크리트어인 ‘탄하(tanha)’이다. ‘생명의 욕구’라는 뜻이다. 춤은 ‘삶의 바람’인 것이다. 춤이 없다는 것은 무엇인가 바라고 원하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함께 손 잡고 추는 춤이 없다면, 함께 이루고자 하는 무엇인가가 없다는 것이다.

필자가 대학을 다니던 1980년대 말, ‘4박자 춤’이라 불리던 ‘해방춤’이 있었다. 둘씩 짝을 지어 ‘농민가’라는 노래에 함께 박수치고 어깨와 발과 엉덩이를 부딪친 후 서로 팔을 걸고 한 바퀴를 도는 간단한 춤이다. 해방춤이라 이름 짓고, 농민가를 듣고 부르며 추었던 데는 이유가 있었으리라. 아마도 나라의 양식을 생산해내는 역할을 맡아 수행했으면서도 힘도, 땅도, 돈도, 배움도 없다는 이유로 양반과 외세와 독재자에게 억압받고 수탈당했던 이들에 대한 연민과 감사와 존중의 마음을 표출하기 위한 것이었으리라.

무엇보다도 그분들은 바로 ‘민중’이라 불리는 우리네 조상님 혹은 부모님 아니던가. 평생을 흙과 태양과 바람과 비는 물론이고, 농가 부채에 시달리면서도 자식은 공부시켜야 한다는 생각에 그 고역같은 농사일을 견뎌내던 분들 말이다. 홍수와 가뭄으로 농사를 망치면 기르던 소라도 팔아 등록금을 대주던 분들 말이다. 해방춤은 바로 그런 분들이 자유롭게 자신의 꿈을 추구하며 사실 수 있는 세상에 대한 바람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었으리라.

어디 농민만을 위한 세상이었겠는가.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 고용과 소득의 불안정, 괄시와 무시라는 비인간적 처우에 고통받아온 노동자와 빈민을 위한 것이기도 하고, 젊은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했으리라. 해방춤은 ‘대동(大同)의 춤’이었던 것이다.

누군가는 그게 무슨 춤이냐고 할지 모른다. 그저 선동을 위한 좌빨들의 율동이지라고 하면서 말이다. 춤이라면 가르마 탄 올백 머리에 멋진 정장을 빼입은 늘씬한 남성과 장미꽃 입에 물고 허벅지 드러나는 붉은 드레스 입은 여성이 추는 탱고는 되어야지 하면서 말이다. 또는 왈츠처럼 우아해야 춤이지 하면서 말이다. 맞다. 필자도 그런 춤을 추고 싶다. 그런데 그 이유가 따로 있다.

19세기 말 아르헨티나 민중들 사이에서 시작된 탱고는 ‘가까이 다가서다’ ‘마음을 움직이다’는 뜻을 갖고 있다. 힘든 삶에도 서로의 마음을 나누는 춤이었던 것이다.

왈츠는 어떠한가. ‘돌다’ ‘구르다’는 뜻을 가진 왈츠는 다문화 사회가 된 19세기 미국에서 조화와 화합을 위한 사귐의 양식이었다. 왈츠가 ‘사교춤’ 중 하나가 된 이유이다. 역시 사교춤 중 하나인 ‘차차차’는 또 어떠한가. 경쾌한 스텝과 허리의 강한 움직임이 특징인 이 춤은 쿠바의 독립을 상징한다. 자신의 즐거움을 마음껏 표현하는 춤을 출 수 있는 것이 바로 독립인 것이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농악공연을 들으며 흥에겨워 춤을 추고있다. 동지를 사흘 앞둔 18일 서울 국립민속박물관에서는 동지 세시 행사가 열렸다. (출처 : 경향DB)


필자는 이 춤들 역시 해방춤과 매한가지로 자기 시대의 삶과 소망을 담고 있기 때문에 추고 싶다는 것이다.

하지만 가장 추고 싶은 춤은 지금 이 땅의 삶과 마음과 꿈을 담고 있는 춤이다. 탱고와 왈츠와 차차차와 조금은 다른 ‘새로운 춤’ 말이다. 그런 춤이어야 정말로 ‘나답고 우리다운 춤’을 출 수 있을 것 같아 하는 말이다. 그런 춤을 춰야 함께 느끼고 바라는 무엇인가가 생겨, 보다 나은 세상으로의 변화를 도모할 수 있을 것 같아 하는 말이다. 말과 글로는 얻을 수 없는 ‘친밀감’에 바탕해 일어나는 그런 변화 말이다.

왜 그런 변화를 가져올 춤이 없는 것일까? 못 찾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못 만들고 있는 것인가? ‘소년 혹은 소녀 시대의 춤’이 있기는 하다. 그런데 이 춤에 사람들이 ‘같은 곳을 바라보며 함께 걸어갈 무엇’인가가 담겨 있나? 어디 한 번 찬찬히 살펴봐야겠다. ‘시대의 춤’이라는 말을 이름 안에 담고 있긴 하니까.


김윤철 |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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