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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용 초대 국민안전처 장관은 지난 19일 출입기자단과의 상견례 간담회에서 ‘한지붕 세가족’으로 출범한 조직을 안정화 시키기 위해 ‘조직융합TF’를 발족하겠다고 했다. 박 장관은 ‘한지붕 세가족’을 넘어 ‘6가족’이라고 표현했다. 소방과 해경, 방재, 행정, 기술직 ‘5개 조직’에 군인(장·차관)까지 있는 ‘6가족’이라고 표현했다. 대한민국 정부조직에 이런 조직 자체가 탄생한 것이 신기할 정도지만, 장관이 “6개월 동안에 조직화합에 주력하겠다”고 한 것을 보면 심각성을 인지한 셈이다.

장관이 외부에서 ‘융합과 화합’을 강조했지만, 정작 내부에서는 파열음이 나오고 있다. 행정 관료들이 부처 내에서 소방조직에 ‘갑질’을 하고 있는 정황이 포착되고 있는 것이다. ‘소방안전특별세’ 운영을 행정관료들이 해야 한다는 논리를 개발, 장관의 목을 조르고 있는 모양새다.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이 지난 20일 행자부 직원들을 상대로 한 워크솝에서 “사람들(공무원)이 타성과 습관에 젖어서 장관들이 대통령이 변화와 실천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고 있다”고 일침을 놨던 ‘적폐’가 국민안전처 내부에서도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과 정부조직법 개정으로 신설된 안전처·인사처의 신임 차관과 본부장이 21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국무위원 식당에서 만나 악수를 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국회는 지난 10월 31일 진통 끝에 멀쩡한 소방방재청을 해체, 국민안전처에 편입하면서 3가지 조건에 합의했다. 그 과정에서 탄생한 것이 ‘소방안전세’다.

내용을 보면 첫째는 중앙소방본부장(옛 소방방재청장)에게 예산과 인사의 독자성을 부여하고, 둘째는 소방·구조·구급 등의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소방안전세’ 도입을 통한 소방예산을 확보한다는 것이다. 셋째는 지방직을 단계적으로 국가직으로 전환하는 동시에 인력충원을 추진하도록 노력한다고 전격 합의했다.

하지만 국민안전처 행정관료는 여·야 원내대표·정책위의장·원내수석부대표가 서명한 합의문의 잉크도 마르기 전에 잿밥에 눈이 먼 모습이다. 누가 봐도 ‘소방안전세’는 소방예산이다. 그리고 소방지휘부인 중앙소방본부가 전권을 행사할 것으로 예측됐다. 그런데 안전정책실(옛 소방방재청 방재직렬+안행부 출신 관료)과 일반직이 장악한 기획재정담당관실이 서로 자기가 쓰겠다고 한다. 기획재정담당관실이 탈락하고, 중앙소방본부와 안전정책실이 ‘2파전 경합’을 벌이고 있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김창영 _ 전국사회부 차장(국민안전처 출입)


소방안전세는 소방인력과 장비가 부족한 소방관에게 쓰라고 생긴 세목이다. 그렇다면 합의서에도 명시된 것 처럼 현실을 잘 아는 중앙소방본부가 배분권을 갖는 것이 당연하다. 매년 3400억원 규모로 예상되는 소방안전세는 오로지 시·도의 소방본부로 내려가 소방관의 처우개선에 쓰여져야 한다.

행정관료들이 배분권을 갖는다면 사용 연한이 지난 소방차와 구급차 교체는 요원하다. 재난현장의 대응 조직인 119 소방에 올 곧이 쓰여지지 않고 과거처럼 방재와 안전캠페인 등에 사용돼 예산낭비의 재탕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 사이 소방관은 여전히 목장갑을 끼고 화재·구급·구조현장에 나가는 악순환의 고리는 끊기지 않는다. 소방방재청 시절 행정관료들이 구조·구급장비 외에 아무런 지원 없이 직원들을 격무에 내몰게 하는 각종 시책만을 양산한 것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예전에 오죽했으면 소방관들이 ‘소방방해청’이라고 힐날 했을 정도였다. 올해 국정감사에서 강기윤 의원도 “소방방재청은 현장 소방관들에게 앵벌이를 시키고 있다”고 했을 정도였다. 중앙 소방조직이 지방 소방조직을 지원하는데 있어 무능한 행태를 보여온 것이다.

새로 출범한 중앙소방본부 지휘부는 정치권이 인사·예산권도 주고 소방안전세도 만들어준 마당에서 예산을 지키지 못하면, 소방관은 실망의 나락으로 빠져 들 것이 불 보듯 하다. 지방 소방관들은 안전처의 중앙소방본부가 독립된 예산권과 인사권을 정확히 행사하면서 대한민국 소방의 명실상부한 지휘부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 자리보전을 위해, 일반직과의 갈등을 피하기 위해, 적당히 소방안전세에 대한 배분에 타협하는 것을 원하지 않고 있다.

소방안전세에 대한 배분권한을 행정관료들이 갖는 순간 국민은 또다시 불안해진다.


김창영 기자 boda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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