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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김명수 대법원장은 사법행정권 남용(판사 블랙리스트) 의혹 해소에 강한 의지를 보이며 ‘제3차 특별조사단’을 출범시켰다. 이번 ‘특조단’의 조사에서 가장 주목을 끄는 부분은 역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인도하지 않은 컴퓨터와 심의관 2명 등의 컴퓨터 안에 있다는 암호화된 760여개의 파일들이다. 문제의 파일들이 담겨 있는 해당 컴퓨터의 개봉에 대하여 사용자 본인들은 협조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강제로 개봉할 수 있는가? 이 경우에는 가능하다. 왜냐하면 판사도 공무원이고 해당 컴퓨터에 저장된 파일들은 공무용(정확히는 법원 공용물)이기 때문이다. 즉 공무용 문서파일에 암호를 설정한 행위는 문서에 대한 열람권한이 없는 자 또는 해킹 등 외부 공격으로부터 문서의 내용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해야 하므로, 정당한 권한이 있다면 얼마든지 개봉할 수 있다.      

따라서 사법행정 사무를 총괄하는 대법원장은 공무용 파일에 대해 사용자 본인의 동의 없이도 개봉하는 것이 가능하다. 다만 그 내부의 파일들 가운데 사용자의 사적 내용으로서 프라이버시 보호의 대상이 되는 경우만을 선별해내면 된다. 오히려 암호를 설정해놓고 그 개봉에 협조하지 않는 행위 자체는 공용물의 사적 남용에 해당되어 문제가 된다. 이렇듯 대법원장의 하명과 그 실천만이 필요할 뿐, 법적인 문제는 그다지 큰 쟁점이 되지 않는다.

이번에는 기술적인 문제를 생각해보자. 암호를 해독해내는 것은 현재로서는 아무런 힌트가 없어 그 자릿수조차 모르는 암호가 무려 760여개나 되는 파일에 걸려 있다니, 일견 녹록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시간과 노력이 소요될 뿐,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먼저 숫자로는 12자리, 대소문자와 특수문자를 포함한 문자로는 8자리 정도까지는, 이미 해독한 각종의 암호값을 집대성해놓은 일종의 사전과 같은 것, 즉 ‘레인보 테이블(Rainbow Table)’이 존재한다. 따라서 일차적으로는 사전을 펼쳐 ‘대조’를 해가는 방식으로 암호 해독을 진행하게 된다.      

만약 해당하는 대조값을 찾을 수 없다면, 별 수 없이 ‘무작위’로 값을 넣어보는 해독방식, 즉 ‘브루털 어택(Brutal Attack)’이 사용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경우에 만약 8자리 숫자로 이루어진 비밀번호를 알아내려면 1억번을 차례로 입력해야 한다니, 소요되는 시간을 고려하면 컴퓨터의 성능이 중요해진다.

대검찰청이나 경찰청의 디지털포렌식 센터가 병렬로 연결된 컴퓨터들로 암호 해독 전용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해독시간을 단축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대상 문서가 760여개나 된다고 해도 사실 큰 부담이 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한 사람이 사용하는 비밀번호란 대체로 동일하거나 유사한 패턴을 가지는 경우가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완전히 다른 비밀번호 수백 개를 기억하며 살아가는 이는 거의 없지 않겠는가?

따라서 암호 해독 작업은 첫 번째의 암호를 풀어내는 것이 관건이고, 그 이후부터는 쉽게 해결되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풀어낸 암호와 동일하거나 최소한 힌트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일단 ‘딱 하나’의 암호를 푸는 것에만 집중하면 된다는 것이다. 요컨대 작업의 특성상 단언할 수는 없으나, 기술적으로도 충분히 해볼 만하다는 것으로 간추릴 수 있겠다.

결국 남는 것은, 이러한 작업을 해줄 수 있는 적정한 전문가의 투입과 사법부의 실천 의지다. 투입되는 전문가의 경우, 국가적으로 중대한 사안인 만큼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인사여야 하며 그 선발 이전에 ‘제척’ 사유의 존부를 면밀하게 검증해야 할 것이다.

또한 투명성과 신뢰성을 담보할 수 있는 절차와 장비를 마련하여 더 이상 논란이 없도록 조치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물론 이러한 추진에 앞서, 우리 법원의 그야말로 제대로 된 ‘결자해지’의 각오가 전제되어야 한다. 기필코 법원 스스로 밝혀내고자 하는 단호한 ‘결단’, 바로 그것 말이다.

<오길영 신경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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