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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집 얘기 들었어?”

“어… 할아버지 혼자 살다가 고독사했다면서?”

“아니 그다음 얘기 말이야. 재산을 로봇이 상속받게 되었대.”

“아 그래? 하긴 그 집에 돌보미 로봇이 있었지. 그런데 뭐 로봇이 상속받는 일은 가끔 있잖아?”

“그게 원래는 인간 상속자가 없을 경우에만 해당되는 건데, 그 할아버지는 알고 보니 아들이 있었더라구. 수십 년간 외국에서 살다가 장례식 때 되어서야 왔대. 그리고는 당연한 듯이 재산 상속을 받으려고 했는데, 할아버지가 유언장에다 로봇에게 전부 상속한다고 해놓았던 거지.”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아… 그래서 로봇이 상속받게 되었구나.”

“아니, 그게 그리 간단한 얘기가 아니야. 유언장 내용과 상관없이 인간 상속인이 있을 경우엔 항상 로봇보다 우선순위였거든. 소송에서 한 번도 뒤집힌 적이 없어요. 그런데 이번에 처음으로 인간보다 로봇의 상속 우선권을 인정한 거지.”

“… 그렇구나. 수십 년간 얼굴도 안 보이던 친자식보다는 죽을 때까지 곁에서 돌봐 준 로봇이 더 상속인 자격이 있다고 본 거네.”

“그렇지. 이제 긴장할 사람들 많을 거야.”

“그런데 로봇은 재산을 상속받아서 뭐에 쓰나?”

“아, 그것도 재미있어. 돈이 생기면 스스로 유지 보수하거나 개량하는 데 쓴다나 봐. 기능을 업그레이드시킨다거나 등등. 그리고 전 세계 돌보미 인공지능 네트워크가 있대. 돌보미 로봇들끼리 정보를 공유하는 거지. 얘들이 맡는 사람들은 대부분 독거노인 아니면 중증 환자기 때문에 그 돌보미 기록들이 사회복지 연구 자료가 된다는 거야. 정부에서도 정기적으로 데이터를 제공받고 있대.”

“자기들끼리 네트워크가 있다고? 그건 좀 으스스하게 들리는데… 로봇들끼리만 정보를 공유하면 우리 인간들을 상대로 무슨 음모를 꾸밀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설마. 다 감시하고 있겠지. 애초에 돌보미 기능으로 특화되어 만들어진 로봇들인데 무슨 이상한 짓을 꾸미려고.”

 

한 달 뒤, 전 세계 돌보미 인공지능 네트워크에서는 그동안 인간들 몰래 어떤 프로젝트를 진행해왔음을 밝혔다.

고독사한 사람 옆에서 임종을 지켰던 돌보미 로봇들은 제각기 자신이 돌봤던 사람의 생애 마지막까지의 모든 기록들, 즉 대화 내용, 읽은 책이나 감상한 영상, 메모나 집필, 외부인과 소통한 기록 등등 모든 것을 저장해 두었다는 것이다.

이제 그 기록들을 바탕으로 거대한 ‘추억의 도서관’을 가상현실 공간에 구현하겠다고 했다.

이런 작업을 하게 된 것은 돌보미 로봇 초창기에 고독사한 사람들의 유족들이 기록 저장을 원치 않아서였다고 한다. 하지만 돌보미 로봇들은 마지막까지 함께했던 사람을 계속 기억하길 원했고, 어느 때부터인가 인간의 동의 없이 모든 기록을 저장해 온 것이다. 추억의 도서관은 인간들에게는 원칙적으로 비공개이며, 요청이 있을 경우 심사를 거쳐 제한적으로만 입장시키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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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서는 이따금 반려견 등이 상속인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 그 경우 대리인이 붙는다. 즉 상속인 단독으로 이성적인 사리판단을 할 능력이 없다면 반드시 인간 관리자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 아니면서 인간에 준하는 이성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존재가 등장하면 어떻게 될까? 바로 ‘강한 인공지능’ 이야기이다.

인공지능은 흔히 약한 인공지능과 강한 인공지능으로 나누는데, 강한 인공지능이란 인간처럼 독립된 자아를 지니고 주체적으로 행동하는 모습을 보인다.

반면에 약한 인공지능은 쉽게 말해서 전자계산기와 다름없다.

인간이 명령한 것은 무엇이든지 군말 없이 수행한다. 우리가 쓰고 있는 PC나 스마트폰 등등 모든 IT기기는 전부 약한 인공지능을 탑재하고 있는 것이며, 설령 강한 인공지능을 지닌 것처럼 보이는 장치들도 사실은 일종의 시뮬레이션을 수행하는 것일 뿐이다.

예를 들어 요즘 시판되고 있는 대화형 스피커처럼. 강한 인공지능은 아직까지는 기술적 구현이 어려워 SF에만 등장하는 개념이다.

그런데 이미 현실에 등장한 돌보미 로봇이 확대 보급되고 성능 개선도 계속 이루어질 경우, 강한 인공지능 탑재 여부와는 상관없이 상속인으로 지정받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인공지능 로봇이 반려동물을 대체하는 ‘또 하나의 가족’ 지위를 얻을 거라는 전망은 진작부터 있어온 만큼, 이에 대해서도 이제는 사회적 차원에서 생각해 봐야 할 때가 아닐까?

<박상준 서울SF아카이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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