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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여성의 권리가 급격히 신장된 것은 국가의 안정기가 아니라 아이러니하게도 전쟁을 겪으면서부터이다. 제1차 세계대전 중 후방 지원이라는 명목으로 여성들도 산업 현장에 투입되었으니 여성들은 지치고 불만이 쌓였다. 반면 정부는 여성들의 자발적 협조가 절실했으므로 이들의 불만과 요구를 간과할 수가 없었다.

여성들도 일하느라 힘들어 죽겠는데 남편들은 밤새 술 마시고 너부러져 있으니 꼴 보기가 싫은 것이 당연하다. 그래서 알코올의 제조, 운반, 판매를 일절 금하는 금주법안을 내세우자 정치가들은 서둘러 이를 의회에서 통과시키고 말았다. 물론 금주법의 시작은 전쟁 중에 부족한 곡물의 전용을 방지하기 위해 추진되었지만 국민들 눈치만 보던 정치가들에 의해 비합리적인 방향으로 나아간 것이다. 자본가들 역시 노동자들의 음주로 인해 생산성이 떨어질 것이 걱정되니 금주법을 열렬히 지지했다.

하지만 술은 없어지지 않았으며 시민들은 결국 높은 거래비용만 더 부담하게 되었다. 부자들은 조금 더 비싼 가격으로 술을 마시게 되는 것뿐이었지만 가난한 서민들은 싸구려 밀주를 만들어 마시다가 생명까지 잃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정치가의 무능과 자본가의 탐욕이 경제를 망치고 국민들을 괴롭히게 되는 대공황의 서막도 이때부터이다. 이러한 시기에 미국 역사상 가장 악명 높은 ‘알 카포네’가 등장하게 된다.

고위직 정부 관리들까지 매수하여 벌이는 카포네의 사업은 날로 번창하였고 사업가들은 부패한 정부기관보다 카포네에게 보호를 요청해 안전하고 편한 길을 택했다. 일반 시민들도 이 ‘밤의 대통령’을 싫어하지 않았다. 그는 부모와 형제 특히 아내에 대한 사랑이 지극했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아주 잘했다. 실업자들을 위해 무료 급식소를 운영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자선사업도 많이 했다.

온갖 불법적 악행으로 카포네는 결국 체포되었지만 그의 보호 밑에서 함께 이득을 본 사업가들은 그에게 불리한 증언과 증거를 제공할 리가 만무했다. 난공불락 같았던 카포네를 다시 잡아들인 것도 겨우 탈세 혐의였다. 그는 “불법적 자금에 합법적 세금을 징수할 수 없다”는 엉터리 논리로 맞서면서 끝까지 자신은 시민들이 잘살 수 있도록 정부보다 더 노력했다고 주장했다. “내 인생의 황금기를 사회공헌으로 보냈다. 공공의 봉사가 내 삶의 모토이다”라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과연 우리는 그가 사회에 공헌했다고 할 수 있는가?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은 ‘알 카포네 사회공헌’이 아니다. CSR은 결과의 분배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과정의 정당성을 요구하는 것이다. 동등한 대우를 해주라는 것이 아니라 동등한 기회를 보장하자는 것이다. 이익을 나누자는 것이 아니라 절차의 공정성을 유지하자는 것이다. 2017년 대한민국에서 ‘현대판 카포네’들이 억울하다고 외친다. 드러난 많은 증거들은 억지이고 조작이거나 강압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 그들은 아직도 국가와 국민, 기업과 소비자를 위해서 합당한 행동이었다고 주장한다. 이제 똑똑한 소비자들의 판단과 공정한 법의 판결이 내려질 차례이다.

김성택 | 넥스트소사이어티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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