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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나먼 미래. 고도로 발달한 과학기술과 부의 불평등한 분배로 인해 인류는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하나는 몸 전체를 기계로 교체하여 영생할 권능을 확보한 인간이고, 다른 하나는 생체조직을 바꿀 돈이 없어 늙고 병들었다가 죽음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이다. 신체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압도적 우위에 있는 기계인간의 취미생활은 별 쓸모없게 된 생체인간을 사냥하는 것이다. 어느 날, 한 여성 생체인간이 기계인간의 사냥감이 되어 목숨을 잃는다. 그는 죽기 직전 아들에게 “반드시 기계 몸을 얻어 영생하라”는 유언을 남긴다. 1978년 일본에서 처음 방영됐고 국내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던 장편 애니메이션 <은하철도 999>의 도입부 줄거리다.

19세기 초 영국에서 일어난 기계 파괴 운동 이래, 기계에 대한 공포는 줄곧 인류의 의식 깊은 곳 한편에 자리 잡아 왔다. 인간과 대등하거나 인간보다 우월한 능력을 확보한 기계가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고, 인간을 지배하며, 종국에는 인간을 멸종시킬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터미네이터>나 <매트릭스> 등의 영화에서도 표현되었다. 애초에 기계로 만들어진 물건이 인간성을 획득해 나가는 과정에 대한 서사는 <바이센테니얼맨> 등의 예외는 있지만 대체로 디스토피아적이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반면 애초에 인간으로 태어난 존재가 기계의 성질을 획득해 나가는 과정에 대한 서사는 대체로 그 반대다. 이 점에서 <은하철도 999>는 독특하다. 고대인들은 신과 인간의 결합에 의해 태어난 ‘헤테로’들, 즉 헤라클레스나 페르세우스, 예수 등이 고통받는 인간을 구원해 주는 히어로-헤테로(hetero)와 히어로(hero)는 본래 같은 뜻이었다-라고 믿고 그들을 ‘구원자’로 섬겼지만, 현대의 영화 속에 등장하는 영웅들은 인간과 기계가 결합한 헤테로들이다. 600만불의 사나이, 로보캅, 아이언맨 등. 고대에 신(神)이 차지했던 자리를, 현대에는 기계가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17세기 철학자 데카르트는 ‘모든 유기체는 기계’라고 설파했다. 그의 시대에 기계를 대표한 물건은 시계였다. 그 시대의 기계로서 제작 원리와 동력원과 구조가 현재까지 그대로 유지되는 것도 시계뿐이다. 주기적으로 태엽만 감아주면 쉬지 않고 움직이며, 고장이 생겨도 부품만 갈아주면 다시 원상태로 회복되는 기계. 게다가 이 기계는 신의 뜻에 따라 운행하는 천체의 리듬, 즉 시간을 표시했다. 시계는 인간이 만들고 작동시키는 기계이지만, 인간의 모범이 되기에 충분했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태엽시계가 처음 들어왔을 때부터, 태엽 감는 걸 ‘밥 준다’고 했다. 이 기계의 ‘인간성’에 대한 통찰은 보편적이었다.

산업혁명은 기계 생산과 기계에 의한 생산을 일반화했다. 더불어 시계보다 더 정밀하고 더 인간적이거나 심지어 인간보다 우월한 기계들이 속출했다. 산업혁명 이래 이 지구상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증가한 물체는 기계와 기계부품이다. 불과 한 세기 전만 해도, 자동 기계를 갖춘 가정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공장을 제외하더라도 집집마다 식구수보다 훨씬 많은 기계들을 보유하고 있다. 지난 100년간 생산된 나사못의 양은, 아마도 지구 전체의 개미 개체수보다 많을 것이다. 생활공간 주변에 기계가 늘어나면서 기계와 인간을 유사한 존재로 인식하는 태도도 확산되었다. 특히 최근 바이오 테크놀로지의 눈부신 발전은, 실제로 인체의 장기(臟器)들을 생산, 복제 가능한 기계부품과 같은 물체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인간을 기계로 인식하는 태도가 폭넓게 형성되자, 인간들의 공동체인 국가도 단일 유기체로 취급하는 관념이 출현했다. 이런 국가를 상상한 이는 헤겔이었으나, 실현한 자는 히틀러였다. 그런데 이 유기체는 그때까지 인간이 상상했던 그 어떤 악마보다도 잔인하고 악랄했다. 유대인 학살의 주요 책임자였던 아이히만의 재판을 지켜본 한나 아렌트는 ‘악마의 현신’인 줄 알았던 그에게서 의외로 자상한 아버지이자 성실한 직장인의 모습만 발견했다. 희대의 악마가 저토록 평범한 인간이었다니! 하지만 언제나 악이 ‘평범성’ 안에 깃드는 것은 아니다. 국가가 하나의 유기체이자 기계로 작동하고, 그 유기체의 수족이거나 기계의 부품처럼 움직여야 ‘평범한’ 국민으로 취급되는 시대에만, 악은 평범성 속에 깃든다.

최순실 일당의 국정농단이 자행되는 동안, 몇 사람의 공무원과 민간인을 제외하곤 대다수가 그들의 지시를 충실히 이행했다. 항의하거나 거부한 사람들은 ‘불량부품’이나 ‘병든 세포’로 낙인찍혀 자기 자리에서 쫓겨났다. 이 시대에 누가 ‘평범한’ 사람인가? 오늘날 이 나라에서 평범한 직장인들이 상사나 부모 친지에게 가장 자주 듣는 충고 중 하나는 “딴 생각하지 말고 시키는 일이나 열심히 해”이다. 하지만 시키는 대로 충실히 수행하는 능력은 기계가 인간보다 훨씬 뛰어나다. 악성코드에 감염된 중앙처리장치가 아무리 부당한 명령을 내려도 저항하거나 반발하지 않고 작동하는 기계 부품 같은 인간이 이 시대의 평범한 인간이다.

최근 기계가 인간의 영역을 침범하는 현상에 대한 두려움이 커지고 있지만, 인간 닮은 기계나 기계 닮은 인간이나 그게 그거다. 만약 머리에 알파고를 장착하고, 바이오 테크놀로지로 생산된 인공장기들로 몸 안을 채우며, 노화하지 않는 피부조직을 이식하여 젊게 오래 사는 인간이 출현한다면, 그게 바로 <은하철도 999>의 기계인간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명령의 정당성 여부를 스스로 판단하고, 부당한 지시에 불복하며, 그 불복을 칭찬하고 보호하는 태도에 ‘평범성’의 지위를 부여하는 것 말고 다른 길이 또 있을까? 발버둥치지 않으면, 인간이 기계로 ‘진화’하는 길을 피하기 어려울 듯하다.

전우용 |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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