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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너무 급해서 전봇대에 노상방뇨를 하고 있는데 동네사람이 다가온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럴 땐 얼른 크게 취한 척 휘청거려라. 이런 처세술(?)이 있을 만큼 우리는 취했다는 것 하나로 웬만한 것은 눈감아 줍니다. 또 이런 우스개도 있습니다. 범죄를 저지르다 경찰에게 걸릴 것 같으면 얼른 소주 한 병을 들이켜라. 그러면 취해서 심신미약이라고 정상참작이 된다고요. 그만큼 한국에서는 유독 술 마시고 저지른 행위에 관대합니다. ‘취해서 그만…’은 정말 마법의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실학자 이덕무는 말했습니다. “훌륭한 사람이 술에 취하면 선한 마음을 드러내고, 참을성 없는 사람이 술에 취하면 사나운 기운을 드러낸다.” 흔히 우리는 ‘술이 죄지 사람이 무슨 죄냐’면서 술김에 저지른 행위들에 너무 관용을 베푸는 듯합니다. ‘술김’을 빙자한 행동들이 그의 본성이고 실체인데 말입니다.

‘술 마시면 있던 죄도 없어진다’라는 요즘 속담이 생겼습니다. 범법이라는 결과가 아닌 원인에 초점을 맞춰 판결하고, 가해자의 입장까지 고려한다고 비꼬는 것이지요. 감정이입은 가해자가 아니라 오히려 고통당한 피해자 쪽에 먼저 해야 하는 거 아니냐면서.

술 때문에 발생하는 온갖 사건·사고와 그로 인해 죽고 다치고 피해 입는 사람들이 미처 다 헤아릴 수도 없을 만큼 많습니다. 취해서 그랬다면 용서되는 법집행에 많은 사람들이 문제를 제기합니다. 취중 범죄는 정상참작이 아니라 오히려 가중처벌을 해야 한다고요.

취중무천자(醉中無天子)는 거짓입니다. 황제도 못 알아보긴커녕 아무리 취해도 만만한 사람만 골라 일을 저지르니까요. 우리 사회가 눈감아 준 ‘술이 죄지’를 ‘취해서 그만’으로 합리화하면서 말입니다. 법이 그리고 처벌이 만만치 않았다면 딴마음이 들었대도 과연 쉽게 실행에 옮길 수 있었을까요?

김승용 | ‘우리말 절대지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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