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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역사적 공상을 즐기는 편이다. 공자가 정말 그렇게 말했을까? 진시황이 유생들을 실제로 묻었을까? 이순신은 총에 맞았을까, 활에 맞았을까? 연산군이 궁궐 주변의 민가를 밀어버리고 후원에서 궁녀들과 난교를 벌였다는데 구체적으로 어땠을까? 역사책을 읽다 보면 이런 게 궁금하기 짝이 없다. 만약 나에게 타임머신을 타고 딱 한 번 특정한 과거 시점으로 시간이동을 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느 시대를 택하는 게 좋을까? 아아, 주여 갈 곳이 너무 많습니다. 원효가 해골바가지에 고인 물을 마시고 떠난 바로 그 시점에 뿅 나타나서 남은 물을 마셔본다든지, 진시황이 분서(焚書)를 위해 천하의 책을 압수해둔 창고에 들어가 책을 챙겨온다든지, 좁쌀 두 가마를 지고 공문에 들어가 툇마루에 앉은 공자에게 “좁쌀도 받아주십니까?” 물어본다든지, 제자로 위장 전입한 다음에는 마당을 쓸다가 “선생님 무엇을 인(仁)이라고 합니까?”라고 묻는다면 <논어>에 내 이름이 등장할지도 모를 일이다.

타임루프(time loop)를 소재로 한 영화도 즐겨 보는 편이다. 그중에서 최고는 주인공 남녀의 사랑이 이뤄질 때까지 무한으로 시간을 돌리는 전지적 감독 시점의 <사랑의 블랙홀>이다. 역시 과거로 돌아간다는 건 너무나도 매력적인 일이다.

그나저나 타임루프가 가능하긴 한 걸까? 뜻있는 과학자들이 열심히 연구하고 있는 걸까? 언젠가 이걸 찾아본 일이 있다. 과연 그런 사람들이 있었다. 2007년 이스라엘 테크니온 공과대학의 아모스 오리 교수는 ‘폐쇄된 시간 모양의 커브’ 이론을 통해 과거로의 이동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타임루프 안에서는 시간이 스스로 과거 쪽으로 완만한 굴곡을 그리고 있어서 사람들이 그 루프를 따라 여행한다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을 것이라고 보았다. 유명 물리학 저널인 ‘피지컬 리뷰’에 게재된 내용이다. 인간이 상상한 대로 이뤄진다는 말이 실감 나는 순간이었다.

얼마 전 술자리에서 복거일의 <역사 속의 나그네> 이야기가 나왔다. 나도 그 소설을 읽은 기억이 났다. 주인공이 토정 이지함이 원님으로 있는 마을에 떨어져 마을 사람들에게 쫓겨 다니며 이러쿵저러쿵했는데 기억나니? 일행이 내게 물었다. 그랬던 거 같아요(사실 기억이 잘 안 남). 그 주인공이 임진왜란 이전에 떨어져서 고춧가루 없는 김치를 먹었잖아요. 그렇게 넘어갔다. 그런데 이 양반이 이야기를 계속 이으려는 게 아닌가.

그때 내가 분연히 떨쳐 일어나서 질문을 던졌다. 만약 당신들에게 일회용 타임루프 승차표가 있고 특정 시점을 지정할 수 있다면 어딜 찍겠냐고 말이다. 한 사람이 바로 대답했다. 서적 도매상 송인서적 부도 사태 이전으로 가고 싶다고.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봤다. 뭐 이런 시답잖은 놈이 있나, 하긴 얻어맞은 액수가 크긴 했지, 이해한다. 그다음 사람은 결혼하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마지막 사람은 지금의 직업을 선택하게 만든 선배를 만나기 전으로 가겠단다. 모두 20세기를 벗어나지 못했다.

아니, 소 잡는 칼을 쥐여줬더니 겨우 마늘이나 다지고 있단 말인가. 한탄스럽기 그지없었던 나는 와인을 벌컥벌컥 들이켠 뒤 말했다. 공자의 살아생전으로 가보고 싶다고. 사람들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그건 너무 스케일이 큰 것 아니냐고 한다. 아니, 뭐가 스케일이 크단 말인가. 평소 역사적 망상을 갈고닦지 않은 분들의 수준이란 겨우 이런 거지. 내가 이해하고 넘어가는 수밖에 없겠다. 송인 운운했던 친구가 나를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다가 공룡은 좀 보고 싶네 하고 덧붙이긴 했다.

증강현실 속에서 약물을 통해 의식을 조작하는 수준이라면 몰라도, 실제 타임머신은 아주 미래에서도 불가능하지 않을까? 만약 가능하려면 지금도 다른 시간의 차원에서는 이순신의 거북선이 학익진을 펼치고 있거나, 히틀러가 머리에 총구를 갖다 대고 있어야 하니 말이다. 즉, 과거라는 물리적 총체가 어딘가에 보관되고 있어야 과거로 돌아가는 것도 가능하지 않겠는가 하는 게 내 상상력의 한계다.

좌우간 직업상 역사서를 자주 대하다 보니 이런 생각까지 하게 되는데, 그 안의 내용을 믿을 수 없어서이기도 하고, 역사를 움직인 말이나 사건을 직접 보고 싶은 욕망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역사는 그걸 용납하지 않는다. 역사란 정말 빈틈이 많은 놈이지만, 빈틈이 없는 역사는 그 순간부터 역사가 아닌 사실일 뿐이다.      

우리에겐 사실보다 역사가 필요하다. 사실 혹은 사실이라고 믿는 것은 너무도 쉽게 주입과 강요의 도구가 될 것이지만, 역사는 해석의 자양분이 되며 간혹 심심풀이 땅콩도 돼주기 때문이다.

강성민 | 글항아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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