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덤프트럭 기사로 살아온 20여년 동안 이렇게 높은 곳은 처음이다. 국회 의원회관이 바로 보이는 여의2교 앞 30m 광고탑 위에 건설노동자 2명이 있다. 전국노동자대회가 있었던 11월11일부터다. 아래에서 보기에는 높아 보이지 않았는데, 위에서 내려다보니 현기증이 난다. 서 있을 수가 없어 엉금엉금 기어다니며 안전 밧줄을 걸고 로프를 몸에 감아 앉을 자리를 확보했다. 이곳에서 국회의원들이 건설노동자들의 삶을 살펴보기를 바라고 있다.

건설노동자들은 ‘건설근로자법’(건설근로자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서 10년째 동결된 퇴직공제부금도 인상하고 건설현장에서 함께 일하는 건설기계 1인 사업자에게도 적용해 사회안전망을 촘촘히 해달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퇴직공제부금은 노후를 조금이나마 보장하는 사회안전망이다. 남들 다 받는 퇴직금을 건설노동자들은 일한 일수만큼 하루 4000원씩 건설사가 건설근로자공제회에 납부하면, 건설노동자가 건설업을 그만둘 때 공제회로부터 퇴직공제부금을 받는다. 건설현장에서 일하면서 체불과 저임금, 장시간 노동, 산재사고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건설기계 1인 사업자에게도 사회보장 차원에서 퇴직공제부금을 적용해야 한다. 건설노동자들이 이 같은 내용을 담아 법 개정을 요구한 건 2008년부터다. 그러나 19대 국회에서도 좌절됐고, 20대 국회에서도 법 통과가 요원하다. 일부 국회의원들이 건설기계 조종사들은 개인사업주로 특수고용직이기 때문에 퇴직공제부금 적용이 어렵다며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1992년부터 덤프트럭 일을 시작했다. 2017년 현재 수중에 남은 건 마이너스통장뿐이다.

덤프트럭은 운반 횟수에 따라 돈을 받는 ‘탕뛰기’가 관행처럼 돼 있다. 그래서 새벽 2~3시부터 건설현장에 나와 김밥으로 허기를 달래며 한 탕이라도 더 하려는 경쟁에 시달리고 있다. 그런 노동을 하면서도 몇 십만원 체불당하는 건 예삿일이었다.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건설기계 노동자들은 사회보장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더불어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 보장은 문재인 정부의 공약 사항이다.

250만 특수고용노동자들은 노조할 권리만이라도 보장해달라고 18년을 투쟁하고 있다. ‘노조할 권리’가 이렇게 힘든 나라가 과연 정상적인 나라인지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노조할 권리 보장은 국제노동기구에서도 권고했고, 국가인권위에서도 권고한 내용이다. 정부는 진정성 있게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며, 국회는 노조법 2조 개정을 통해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노조할 권리를 보장하도록 조속히 입법해야 한다.

억울해서, 또 간절해서 30m 고공에 발 디딜 곳조차 마땅치 않은 곳에 올랐다. 별달리 막을 것이 없어 온몸으로 비바람을 맞으며 국회의사당을 바라보고 있다. 한편으로 광고탑에서 바라보는 여의도의 밤풍경이 너무도 아름답다는 감상에 빠진다. 도로와 건물만 보이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건설노동자들의 노동이 보인다. 건설노동자들이 흘린 땀방울만큼 건물은 올라갔고, 도로는 건설됐다. 국회의원들의 눈에도 건설노동자들의 노동이 들어왔으면 좋겠다. 저 건물, 저 도로, 저 불빛에는 쓴 소주 들이켜며 고된 노동과 천대의 설움을 삭였을 건설노동자들의 땀과 눈물이 스며 있다.

<이영철 | 건설노조 수석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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