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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초에 있었던 이스탄불 국제도서전을 찾은 관객은 60만명이 넘는다. 직접 가서 보기 전에는 믿지 못했다. 주로 전문가들이 모이는 도서전이지만 규모에서 세계 최대를 자랑한다는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 주말의 일반 관객을 합해도 20만명가량 오는 것을 생각하면 상상이 어려웠던 탓이다. 그런데도 터키의 출판인들이나 관료, 정치인들은 아직도 숫자가 모자란다고 입을 모았다. 개막식에서 터키출판협회장과 이스탄불 시장은 인구 1500만명에서 60만명밖에 오지 않은 것은 해야 할 노력이 많이 남아 있다는 의미라고 했다.

이스탄불 시민이 1500만명이라지만, 서울도 수도권 인구를 합하면 2000만명. 결코 적지 않다. 내년 6월에 있을 서울국제도서전을 준비해야 하는 입장에서 우린 얼마나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인지 걱정이 앞선다. 올해 성황이었고 이전에 비해 큰 발전을 했다고 평가되는데도 추산으로 20만명의 관객을 모았을 뿐인데 60만명에도 배고프다는 터키에 가보고 만감이 교차했다. 물론 관람객만 많다고 좋은 것은 아닐 것이다. 터키에 다른 즐길거리가 다양하지 않아서 도서전 같은 행사의 인기가 높다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터키는 읽는 문화가 아니라 듣는 문화라서 책의 인기가 없다는 설명과는 어떻게 아귀가 맞는 것인지 모르겠다. 어떤 이유이든 문화적 차이와 공간적인 차이 때문에 그것들이 서울국제도서전에 그대로 적용되지는 않는다. 그리고 심지어 서울국제도서전을 사람이 그렇게 많이 오도록 만드는 것이 좋은지도 생각해 볼 일이다.

전문가들의 행사인 도서전은 일반 관객들이 참여하는 것을 제한하고 전문가들이 사업적인 대화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다. 런던이나 볼로냐의 국제도서전은 일반인들에게는 출판 관계자들의 축제인 셈이다. 물론 프랑크푸르트 같은 도서전은 주말엔 일반인들에게 문을 열어 책에 목마른 사람들을 맞는다. 이때는 특별한 옷을 입고 분장을 한 관람객에겐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 미국이나 일본 만화의 캐릭터처럼 꾸민 행렬이 길게 늘어서 입장을 기다리는 모습은 장관이다. 흥겹다.

이런 저작권 거래를 비롯한 사업의 측면에서 아직 서울국제도서전은 많이 부족하다. 아직까지 참여하는 나라의 숫자가 20개국에 미치지 못한다. 베이징 도서전에 80여개, 타이베이 도서전에 50여개의 나라가 참여하는 것을 생각하면 아직 시작도 못한 수준이다.

하지만 베이징, 도쿄, 타이베이 등은 약점들이 있다. 중국은 아직까지 출판이 정부의 강력한 통제 아래 있어서 자유로운 거래에 제약이 많다. 일본은 도서전 회사와의 문제 때문에 2년째 도서전을 제대로 열지 못하고 있다. 대만은 중국의 견제로 국가의 지위를 가지고 활동할 수 없는 처지다. 아직까지 다른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출판 산업은 한국에 비하면 규모와 질적인 면에서 미흡하다. 따라서 아시아 시장을 상대로 한 저작권 거래 시장을 열어야 한다면 서울이 여러모로 좋은 선택일 수가 있다. 서울국제도서전을 이 방향으로 발전시킬 생각이라면 관람객 숫자에 집착할 일이 아니다. 반대로 이스탄불이나 파리처럼 국내의 독자들과 출판사들이 만나는 것에 중점을 둔다면 관람객의 숫자가 늘어날수록 좋은 일이다. 독자들의 관심을 끌 내용들을 준비하고 일년간 출판 산업이 이루어낸 성과를 나누는 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온갖 종류의 미디어에 담긴 콘텐츠들을 모아야 한다.

내년 서울국제도서전은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 볼 생각이다. 주빈국인 체코를 비롯해서 참가국을 늘리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엊그제 이란이 참여 의사를 밝히는 연락을 해왔고 다른 나라들과도 꾸준히 국제도서전을 통해 만나 참가를 권유하고 있다. 그리고 세계적인 저작권 시장을 운영해 본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측과 저작권 시장을 공동으로 운영하는 협의를 시작하기로 했다. 이렇게 되면, 전문가들만을 위한 시간이나 공간을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그 고민 위에 더 많은 관람객과 함께 호흡할 내용들을 만들기 위한 노력도 하고 있다.

서울국제도서전을 주관하는 대한출판문화협회는 회원사들의 범위를 만화, 전자출판, 그리고 다른 단체로 모여 있는 출판사들까지 포함하도록 늘리고 있다. 출판인회의, 만화출판협회, 잡지협회 등 출판계 단체들과도 긴밀한 협력을 통해 도서전을 준비하고 있다. 독립적으로, 다른 종류의 독자들에게 큰 관심을 받아왔던 독립출판물이나 라이트노벨 같은 분야의 행사들도 서울국제도서전 안에서 치르려고 한다. 양손에 떡을 쥐고 우물쭈물하다가 낭패를 볼 수는 없기에 바짝 긴장을 하고 있다.

<주일우 | 이음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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