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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조류인플루엔자에 걸렸다는 이유로 닭과 오리들을 산 채로 땅에 묻고 있다. 인간에게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를 옮길 수 있다는 이유로, 또 다른 양계장으로도 확산될 수 있다는 이유로 이런 끔찍한 행위가 정당화될 수 있을까. 어느 누가 이 행위에 면죄부를 받을 수 있을까. 며칠 전에 밥상에 올라온 달걀프라이가 어쩌면 오늘 생매장당한 닭이 낳은 알로 만든 것일지 모른다. 아이들에게 사다 준 케이크나 과자 속에도 며칠 전 생매장당한 닭이 낳은 알이 섞여 있을 것이다. 우리 모두가 공범자들인 셈이다. 내 손에 피를 묻히지 않았을 뿐 누구도 이 행위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살처분이라는 행정명령을 내린 사람은 공문서에 결재 도장만 찍었을 뿐이겠지만, 그 또한 살처분이라는 건조한 이름으로 진행되는 생매장의 아비규환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제 손으로 수만 생명을 파묻는 포클레인 기사나 양계장 주인만이 그 끔찍한 행위에 대한 트라우마를 갖게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 모두가 알게 모르게 정신적 외상을 입는다. 더 민감하거나 둔감한 차이는 있겠지만 모두의 영혼에 상처가 새겨진다.

방역당국 관계자들이 조류인플루엔자(AI) 확진 판정을 받은 충북 음성군 한 오리 농가에서 지난달 21일 살처분한 오리들을 묻기 위해 땅을 판 뒤 대형 비닐을 깔고 있다. 연합뉴스

키우던 닭을 파묻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양계장 주인의 경우 단순히 사업 실패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닐 것이다. 그이가 감당해야 했던 절망감에 대해서도 우리 모두는 책임이 있다. 그렇다면 이런 결정을 하기 전에, 마땅히 그 책임을 나눠 지게 될 이 사회의 모든 사람들에게 과연 그 책임을 나눠 질 것인지를 물어야 하지 않을까. 그랬다면 과연 누가 동의할 수 있을까. 만에 하나 자신이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감염될 수도 있으니 수백만마리의 닭을 생매장하자고, 그 양계장 주인이 절망에 빠져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도 있음을 알면서 그러자고 동의할 사람이 있을까.

설령 최악의 경우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사람에게 옮겨져서 몇십명이 죽게 될지라도 그 위험성은 우리 모두가 감내해야 할 일이다. 두 발 달린 동물, 날개까지 달린 동물을 A4 종이 한 장 넓이도 안 되는 공간에 가둬놓고서 잠도 제대로 재우지 않고 알 낳는 기계로 살다 가게 만드는 반생명적인 환경을 바꾸지 않는 한 되풀이될 수밖에 없는 일이다. 닭과 오리들을 그렇게 열악한 환경 속에 방치한 책임은 우리 모두가 지는 것이 마땅하다.

사실 동물과 인간이 바이러스를 서로 주고받는 것은 비일비재한 일이다. 이 지구상에 살아 있는 모든 생명체들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살아가기 마련이다. 애완동물 때문에 감염되는 질병도 적지 않다. 독감보다 훨씬 위험한 질병에 걸릴 수도 있다. 그러니 전국의 모든 애완동물을 생매장해야 한다면 어느 누가 동의하겠는가. 이름 없이, 단지 이름이 없다는 이유로 생매장당하는 수십 수백만 생명들의 비명소리에 귀를 막지 말자. 조류인플루엔자보다 무서운 것은 생명에 대한 우리들의 무감각이다.

현병호 교육잡지 ‘민들레’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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