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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신년(丙申年)이 떠난다. 얼마 남지 않았다. 대한민국은 기로에 서 있다. 붕괴냐 재건이냐. 병신년이 주고 가는 숙제다. 이 지경까지 엉망일 줄 차마 몰랐다. 그래도 다행이다. 감쪽같이 끝내 감추고 떠나지 못해서. 분노와 인식, 절망과 희망이 뒤섞였다. 맹목과 부역의 음험한 이중주가 대한민국을 깡그리 망가뜨렸다. 청와대, 정부, 국회, 법원, 검찰, 기업, 언론, 학교 가릴 것 없이 불의와 패악에 앞장섰다. 이제 그 거대한 카르텔을 무너뜨려야 할 때다. 그게 병신년이 우리에게 안겨준 과제다.

청와대와 정부의 무능과 부패를 말한다. 사람들이 모이면 죄다 그게 화제다. 그러나 정작 악의 굵은 뿌리는 사악한 기업들이다. 삼성전자에서 일하던 직원이 백혈병으로 죽었다. 겨우 스물네 살의 꽃다운 나이였다. 10년 전의 일이다. 그녀의 부친은 근로복지공단에 산업재해 유족급여를 신청했다. 그러나 공단은 인정도 급여지급도 거부했다. ‘근로복지’의 이름을 썼지만 근로자의 편은 아니었다. 마치 고용노동부가 노동자가 아니라 기업 편인 것처럼. 철저하게 약자들은 유린되는 사회고 국가다.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은 삼성전자에 사과와 대책을 요구했다. 그러나 회사는 무시했다. 삼성은 미국의 산업환경 관련 회사에 용역을 맡겼다. 그 비용만으로도 보상금은 마련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기업의 입장에서는 그깟 푼돈쯤이야 문제가 아니었다. 향후 비슷한 사례에 대한 예방이 더 중요했다. 죽은 이와 유가족에 대한 배려 따위는 애당초 없었다. 예상처럼 용역을 받은 인바이런은 기업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법원은 산업재해를 인정했다. 그래도 기업은 거부하며 버티고 있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국민연금은 국민들의 것이다. 그것만이 유일한 노후 대책인 사람들이 많다. 하루아침에 수천억원이 사라졌다. 파급효과까지 따지면 2조원에 달할 거라는 분석도 있다. 결국 국민연금이 삼성에 바친 돈이다. 그것도 엄청난 돈을 가진 자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서. 삼성과 이재용은 손대지 않고 코 풀었다. 그 대가로 미르·K스포츠 재단에 204억원을 출연했다. 최순실·정유라에게 220억원을, 장시호의 재단에는 16억원이 넘는 돈을 바쳤다. 그런 기업이 정작 자기 회사에서 일하다 죽은 이에게는 고작 500만원을 주었다.

청문회에서 이재용 부회장은 그 지적에 대해 말했다. 아이 둘 가진 사람으로 가슴 아프다고. 가슴이 아프다? 누군가의 ‘피눈물’과 같은 논리다, 500만원만 건네졌다는 건 모른다고 대답했다. 모른다? 그럼 아는 게 뭔가! 그렇게 무능하면 기업에서 손 떼야 한다.

기업은 결코 이익 없이는 돈 안 쓴다. 400억원쯤 쓰고 몇 조원 얻는다. 사업으로 버는 것보다 쏠쏠하다. 그 맛을 포기하지 못한다. 권력은 바뀌어도 재력은 불변이다. ‘부자들은 돈 갖고 장난치고, 정치인들은 권력 갖고 장난치고, 법조인들은 법 갖고 장난치며, 학자들은 지식 갖고 장난치는’ 사회다. 그 뿌리가 예전에는 정치였지만 지금은 기업이다. 기업이 거기에 익숙해지면 미래가치에 무심해진다. 그러니 고용 창출하지 못한다. 국제경쟁력도 떨어진다. 그런 악순환의 첫 단추가 바로 정경유착이다. 그리고 그 비용은 고스란히 서민들의 지갑에서 나간다.

기업들, 특히 재벌대기업들은 걸핏하면 규제 철폐를 외친다. 그 규제들 대부분은 기업의 부도덕한 탐욕의 결과물들이다. 문제를 일으켜도 처벌은 미미하다. 그러니 이익이 생기면 일단 저지른다. 그리고 과징금 푼돈으로 때운다.

우리도 징벌적 처벌을 도입해야 한다. 그것 때문에 기업 못하겠다는 건 그 나쁜 짓 계속하겠다는 것과 같다. 그저 만만한 게 서민들의 지갑이다. 일 터지면 공적자금 운운하며 세금으로 때운다. 그러면서 정작 국외에서는 설설 긴다. 이러니 국제경쟁력은 언감생심이다.

대한민국 재벌들은 거의 대부분 정경유착의 수혜자다. 성공의 토대 큰 부분이 거기다. 초기 산업화 과정에서 어느 정도 필요했다 치자. 그러나 한번 맛들이고 길들여지니 못 버린다. 4대까지 세습된다. 기업을 개인의 재산으로 여긴다. 회장의 아들이 뛰어날 수 있다. 그건 행운이다. 그러나 몇 대 이어가며 계속 그런 인재가 나오기는 어렵다. 청나라를 강건하게 했던 강희제, 옹정제, 건륭제가 거푸 이어진 건 지극히 예외적이다. 성군의 후대가 조금이라도 모자라면 왕조 전체가 휘청댄다. 하물며 기업은 말할 것도 없다. 모자란 자가 금수저 문 탓에 망가뜨리는 건 한순간이다. 전문경영자에게 맡겨야 한다. 수평적 조직으로 탈바꿈해야 산다. 지분 비율만큼만 누리면 된다. 여전히 구태에 매이면 끝내 재벌해체 요구에 직면케 될 것이다.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지 않고는 정권교체로도 어렵다. 이제 끝내야 한다. 그게 시대의 명령이다.

검사는 사회적 거악 척결을 서약한다. 검사와 검찰의 부패는 거악을 키우는 못자리다. 권력과 재벌의 눈치 보느라 정의는 망가져도 남의 일이다. 그런 검사가 소수라고 할 일이 아니다. 그 소수가 전체를 망친다. 법을 잘 알아서 법망을 빠지는 법도 잘 안다. ‘법꾸라지’들이 판친다. 김기춘, 우병우뿐일까? 지위와 권한 그만큼 누렸으면 충분하다. 옷 벗으면 돈도 더 벌 수 있다. 남들은 퇴직이 곧 죽음인데. 그래도 여전히 위만 바라본다. 진경준 전 검사장이 120억원을 꿀꺽했다. 그런데 법원은 ‘친구’가 준 돈은 뇌물이 아니란다. 그런 ‘선물’하는 친구 없는 걸 한탄해야 하나? 1%들끼리 짬짜미하는 사회는 이제는 화장(化粧)도 효력이 없다. 화장(火葬)이 답이다. 아예 염치가 없다. 법적 책임이 없어도 도덕적 책임으로 물러나던 세상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모두 ‘아몰랑’으로 내뺀다.

그 정점은 무능하고 무책임하며 부패한 대통령이다. 업무 시간에 사우나 갔다가 걸리면 직위해제나 파면까지 당한다. 그런데 대통령은 출근도 않고 재택(장소만 그렇지 일은 하지 않았으니 ‘근무’는 아닐)이었다. 더구나 사악하고 죄책감조차 없다. 탄핵이 끝이 아니다. 사회를 완전히 올바르게 재편해야 한다. 시민의 재탄생으로 나아가야 한다. 개헌 운운하는 이들이 많다. 제 잇속에 따른 셈법들이다. 헌법 때문이 아니다. 있는 헌법 제대로만 지키면 된다. 지금 당면과제는 개헌이 아니라 개혁이다. 문제의 핵심에 몰두해야 한다. 모든 악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그게 우리가 치른 값의 핵심이다. 경악과 자괴감을 느끼게 한 병신년이 준 선물이다. 송두리째 망가진 대한민국, 다시 세워야 한다. 그렇게 병신년을 보내야 한다. 잘 가라 병신년!

김경집 인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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