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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

[기고]이게 사법인가

opinionX 2018. 9. 11. 10:07

검찰개혁에 이어 법원개혁에 대한 국민 여망이 뜨겁다. 법원이 사법개혁 귀착지라는 점에서 당연한 수순으로 보이지만 사법부 스스로 자초했다는 점에 그 심각성이 있다.

끊임없이 검찰개혁이 논의되고 있는 사이에 양승태 대법원은 상고법원 도입에 총력을 쏟았다. 현직 법관이 입법 로비를 위해 국회에서 살다시피 했다는 말도 들린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일찍이 몽테스키외 이래로 정립된 삼권분립의 근간을 해치는 행위에 가깝다.

법관 사찰, 재판거래 의혹, 법원비리 수사 기밀 유출 및 비자금 조성 사건 등의 실체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그 모습이 기업의 행태와 흡사하다. 자신을 지켜줄 것이라 믿었던 마지막 보루가 무너지고 있음을 보는 국민들은 참담한 심경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8년9월4일 (출처:경향신문DB)

법관이 누구던가. 검은 천으로 두 눈을 가린 채 인간의 잘잘못을 가리고자 했던 정의의 여신 디케의 화신에 다름없다. 두 눈으로 정면을 응시하는 대법원 현관의 디케상은 우리가 알고 있는 그런 상이 아니다. 혹 이러한 변형된 상에서 나온 정의 관념이 오늘날 사법부의 암울한 현실을 초래한 건 아닌지 상상이 꼬리를 문다.

민초들은 비록 팍팍한 삶을 살아가지만 그래도 이 사회에 한 가닥 정의가 살아있으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런데 최근 드러난 사법농단은 보통사람들이 가진 일말의 기대감마저 무너뜨렸다. 이는 우리 사회의 정신적 안전망의 파괴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매우 심각한 문제다. 법정에서 더 이상 보편타당한 재판을 기대하기 어렵다면 사법부(司法府)는 사법부(死法府)에 지나지 않는다.

한편 이를 단순히 사법부만의 문제에 국한된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야말로 헌법이 보장한 국민주권주의에 대한 커다란 위협이다. 우리는 대한민국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가치에 확고한 믿음을 가져왔고 또 자랑스러워해 왔다. 그런데 정작 이를 수호해야 할 법원은 모든 권력이 재판으로부터 나온다고 여겼던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김명수 대법원이 들어선 지 1년이 되었다. 이번 기회에 사법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온갖 불법행위들을 걷어내야 한다. 적폐청산 작업에 대해 내부 저항이 있음도 간간이 흘러나오고 있다. 실로 외부의 적보다 내부의 적이 더 무서운 것임을 안다면 개혁작업이 생각대로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든 자체 개혁이 지지부진하면 결국 국민이 나설 수밖에 없음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하루빨리 법원을 헌법이 정한 제자리로 갖다놓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하여 국민들의 허탈감을 치유해 주는 동시에 묵묵히 정의를 좇아 일하는 대다수 법관들의 자긍심을 고취시켜 주어야 할 것이다.

올해는 법원 70돌을 맞는 뜻깊은 해다. 그에 걸맞게 사법부 내부의 적폐를 도려내라는 국민들의 목소리도 유례없이 높다. 가뜩이나 보수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사법부이기에 그 길이 험난한 것임을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오히려 김 대법원장 체제에 거는 기대가 크다. 분명한 것은 국민들이 김 대법원장의 사법부를 신뢰하고 있으며 법원 제자리 찾기 시도를 적극 지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국민들은 디케를 향해 끊임없이 묻는다.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이게 사법인가를.

<최영승 | 대한법무사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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