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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국회의 계절이다. 여야 모두 100일간의 대장정 동안 입법과 예산전쟁을 치르면서 알찬 결실을 거두려 할 것이다. 문재인 정부 2년차에 열리는 정기국회는 시작부터 신경전과 기싸움으로 앞으로 험난한 여정을 예고하고 있다. 이번 국회에서 반드시 민생·개혁입법을 처리해야 할 여당과 소득주도성장 등 경제정책 실패를 물고 늘어지려는 야당이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부터 거친 말로 주도권 싸움을 벌인다. 여야 모두 국민과 민생경제를 말하지만 벌써부터 도발과 응전이 넘쳐난다. 그래서 정기국회 기상도는 ‘매우 흐림’과 ‘폭풍우’다. 입만 열면 국민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오고 국민만 바라보고 국민을 두려워하겠다지만 정작 누구를 위한 싸움인지 알 수 없다. 드루킹 특검 등 현안에 대한 대립과 교착의 연속이었던 전반기 국회가 되풀이될까 걱정이다. 20대 국회 전반기는 개점휴업 상태여서 그야말로 식물국회였다. 입법기능은 거의 마비되었다. 세비에 더해 특수활동비까지 엄청나게 투입한 비용에 비하면 턱없는 성과라서 ‘가성비’는 거의 제로수준이었다. 무노동 무임금이라는 지적이 나올 정도로 ‘밥값’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고질적인 양당체제 때문이다. 집권 여당과 거대 야당이 대립하면 국회는 공전한다. 여당은 자립하지 못하고 대통령·행정부 편을 들고 야당은 정권 흠집 내기와 반대를 일삼는 소모적 대결정치가 일상화되었다. 정부·여당을 끌어내려야 총선에도 이기고 집권 가능성이 커진다고 믿는 야당은 늘 정부에 대한 비판을 퍼붓고 국정운영에 발목을 잡는다. 이렇듯 승자독식의 양당체제는 후진적이고 정의롭지 못한 정치를 만들어낸다. 그래서 촛불민심은 정치개혁을 갈망했다. 양당 대치의 국회를 협치의 국회로 만들려면 다당제가 실현되어야 한다. 건강한 여야관계가 형성되고 정치문화가 발전하려면 다원적 정당체제가 국회에서 정립되어야 한다. 20대 국회 출범은 다당제이지만 민의가 제대로 반영된 다당제는 아니었다. 현행의 소선거구제에서는 한 표라도 많은 후보가 국회의원으로 당선된다. 2등이 얻은 그 많은 표심은 쓰레기통으로 버려진다. 의석수가 득표수와 비례하지 않는다. 다수당이 되면 마치 유권자의 표심을 다 얻은 것처럼 승자로서 횡포를 일삼는다. 그러나 인위적 다수당이다. 민심은 버려진 표에도 숨어 있는 것이다. 득표수에 비례하지 않는 의석수는 이렇게 민심을 왜곡한다.

민심이 제대로 반영되는 선거제도를 만들어야 제대로 된 정치가 가능해진다. 사회적 약자와 소수의 목소리도 국회구성에 드러내야 정치가 정치다워진다. 제왕적 대통령을 견제할 수 있는 권력은 입법부뿐이다. 제대로 감시하려면 민의가 그대로 반영된 국회구성이어야 한다.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그 해답이다. 정치개혁 입법이 필요한 이유다. 내후년이 21대 총선이어서 내년에는 시간도 없다. 한국 정치가 변화의 갈림길에 서 있다. 이번 정기국회가 적기이자 마지노선이다. 이미 여야는 20대 국회 하반기에도 정치개혁특별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합의했다. 그런데 정의당 심상정 의원을 위원장으로 내정했지만 자유한국당이 교섭단체의 지위를 상실한 정의당을 빼라며 몽니부리기로 시동조차 걸지 못하고 있다. 대통령의 선거공약이자 여당의 당론도 연동형 비례대표제지만 더불어민주당은 어쩐 일인지 선거제도 개혁에 매우 소극적이다. 지금의 지지율로 보면 다음 총선에서 다수 여당이 될 것이라는 기대 때문에 선뜻 나서지 않는 것이다. 꼼수를 피우는 이런 여당에 건넬 말은 “정치는 생물이다. 살아 움직인다”다. 예측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민심이 어떻게 변할지 아무도 모른다. 다음 선거를 예단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원칙으로 돌아가야 한다. 복잡한 셈법이 필요 없다. 표심이 온전히 반영되는 선거제도가 무엇인가를 생각하면 답은 정해져 있다. 한국 정치도 다른 민주주의 국가들처럼 다원적 정당체제에서 정책연대 등 협치가 가능해야 한다. 국민의 다양한 정치적 의사가 그대로 투영되고 민주적 대표성이 왜곡되지 않는 제도가 무엇인지는 국민 모두가 안다. 여야 국회의원도 모두 잘 알고 있다.

그렇게도 국민을 위한다면 이번 정기국회의 화두는 선거제도 개혁과 선거법 개정이어야 한다. 고령화사회에서 고령층의 목소리와 동일하게 젊은층의 표심도 반영되도록 투표권 연령도 낮추어야 한다. 시민의 참정권을 제약하는 선거법상의 각종 규제와 독소조항도 청소해야 한다. 민생법안, 개혁입법과 판문점선언 비준안 등 할 일이 많지만 무엇보다도 정치개혁을 반드시 이루어내야 한다. 그래야 밥값 한번 제대로 하는 것이다. 촛불혁명의 시대정신이 무엇인지를 읽고 입법부의 존재이유를 보여줘야 한다.

<하태훈 |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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