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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총칭하는 human의 어원은 라틴어 humus이고 ‘흙’을 뜻한다고 한다. 인간의 어원적 의미는 흙의 자식이라는 말일 것이다. 그런데 법에서는 인간을 person이라 부르고 이는 권리의 주체가 되는 법적 자격을 뜻한다. 문제는 법에서의 person이 인간만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회사 등 비인간(non human) 단체도 인간과 독립해 법인격을 부여받고 person(法人)이 된다. 법인은 인간 개인과 마찬가지로 권리 주체로서 보호받고 이익을 누린다. 최근 미국에선 영리법인에 수정헌법 제1조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는 판례가 나와 논란을 빚기도 했다. 이것은 헌법상의 기본권마저 비인간 person에게 인정해주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요즘 세상에 왜 인간이 아니고 사물에 불과한 단체에 권리를 인정해주느냐며 이상하다 생각할 사람은 아마도 거의 없을 것이다. 더구나 회사는 사물이라 하더라도 인간집단의 성격을 지니기 때문에 별 의구심 없이 더 자연스레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근대 초 법인을 인정할 거냐 말 거냐는 상당한 논란거리였고 법인이 장차 권리는 누리되 책임은 회피하는 애물단지가 될 수 있다는 비판도 많았다. 이렇게 보면 법제도의 근간이며 핵심요소인 주체의 문제도 불변의 원리라기보다는, 필요에 따라 설정되는 것이고 통념의 대상이 될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근대는 인간이 아닌 비인간 회사에 주체의 자리를 내주고 법인격을 확장시켜왔는데 이는 경제성장의 시대적 요청에 따른 것이었다 할 수 있다. 그런데 최근에 와서 세계적으로 영 다른 차원에서 비인간의 법인격을 인정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는 법의 근간이며 핵심요소인 주체의 확장과 변화를 초래하는 거라서 시대가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넘어가는 커다란 전환에 직면하고 있는 징조로 읽힌다. 물론 이 현상은 아직 다수가 받아들일 정도로 두드러지진 않기에 점차 희미하게 다가오는 다른 세상의 전조라 할 만하다.

2008년 에콰도르는 세계 최초로 헌법에 자연의 권리(the rights of Nature)를 명문화했다. 여기엔 그 나라 정치지도자를 중심으로 한 정치적 결단과 원주민 문화의 전통이 살아있고 자연보호의 필요성이 높았던 배경이 작용했다. 남미에서는 자연이 파챠마마(Pachamama)라 부르는 영적 존재로 인식되었고, 그래서 어머니 지구(Mother Earth)라는 표현이 자주 사용된다. 그후 에콰도르에선 자연의 권리를 보호법익으로 주장하는 소송들이 제기돼왔고, 이를 인정하는 판결들이 나오고 있다. 특히 정부가 환경보호의 일환으로 하는 정책 실행에서 자연의 권리를 원용하거나, 자연의 권리 위반을 이유로 과징금 부과 등의 처분을 하는 사례들이 나오고 있다. 헌법재판소도 자연의 권리가 헌법의 중핵에 해당하므로 재산권을 비롯한 모든 권리의 해석과 적용에 영향을 미친다고 판시했다. 자연의 권리 조항은 생명중심 사상을 반영한다고도 언급했다.

2017년 3월 뉴질랜드 국회는 원주민 마오리족의 150년에 걸친 요구를 받아들여 황가누이강(the Whanganui River)에 법인격을 부여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강의 권리를 인정한 것인데, 권리 행사는 마오리족과 정부가 각각 1명씩을 임명해서 공동수행하도록 했다. 그해 5월에는 콜롬비아의 헌법재판소가 아마존강의 일부인 아트라토강(Atrato River)과 그 일대에 권리를 부여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2018년 4월 콜롬비아 대법원은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인용해서 정부에 강 지역에 보호조치를 취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 외 인도의 고등법원에서도 강의 권리나 히말라야 빙하의 권리를 인정하는 판결들이 나왔다. 2014년부터 국제사회에서는 전문가와 시민운동단체들을 중심으로 자연의 권리 침해에 대한 모의 국제법정을 개최하고 있다. 

미국의 사례로는 자연의 권리를 인정한 피츠버그시의 조례 등을 들 수 있는데, 환경파괴가 심한 지역에서 사유재산을 이유로 정부가 어떠한 보호조치도 하기 힘들 때, 자연의 권리를 이유로 해서 제재를 가할 수 있다. 이처럼 자연의 권리와 관련해 헌법과 같은 상위 규범은 물론, 조례와 같은 가장 가벼운 수준의 법규에서도 다양하게 인정 사례들이 나타나고 있다. 한국에서도 최근 개헌 논의 과정에서 생명체 존중이 거론되었다. 지방자치단체의 필요에 따라 조례 등의 신설을 통해 자연의 권리를 도입해보는 시도도 바람직하다고 생각된다.

2014년 12월 아르헨티나에서는 오랑우탄에게 비인간 법인격(non human person)을 인정하고 동물원의 불법포획을 불법구금으로 보고 풀어주라는 판결이 나오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올해 멸종위기에 처한 설악산 산양 28마리가 직접 나서서 오색케이블카 설치를 반대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2017년 말 현재 가구수의 28% 이상이 반려동물을 키우면서 동물의 권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운동단체들도 생겨났고, 국회에 동물보호와 관련된 법안이 67건이나 제출됐다고 한다.

달도 차면 기울고, 그릇도 차면 넘친다 했는데, 이제 인간의 세계가 성장과 번영의 변곡점을 지나 다른 국면으로 접어든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근대가 만들어낸 법인은 인간의 주체성을 단체의 형태로 확장해서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능력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의 발전과 변화였다고 할 수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지금 비인간 법인격이 늘어나는 현상은 다른 생명들과의 공존을 지향하고, 인간이 그 속에 포함되는 생명 전체의 주체성으로 확장시켜 가는 방향성을 갖고 있다.

우리의 삶은 아침에 일어나 밤에 잠들 때까지 밥, 야채, 고기와 커피, 술 등 갖가지 생명을 먹으며 이어진다. 먹는 게 중단되면 죽는다. 본질에서 생명의존적으로 생명을 유지하면서도 다른 생명을 존중하고 소중히 여기는 가치관은 우리에게 실종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제 와서 이러한 자연의 권리를 통해 비인간 생명들의 법인격을 인정하려는 움직임은 그만큼 생명이 사라지고 있는 절박한 상황을 반영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어쨌든 이러한 person의 중대한 변화는 인간의 어원을 연상시킨다. 인간은 흙의 자식이라는 것이다. 인간뿐 아니라 뭇 생명이 모두 흙에서 왔다. 근대에 생겨난 법인이 흙으로부터 멀어지는 인간의 힘을 과시하는 것이었다면, 이제 흙에서 난 자(者) 흙으로 돌아가는 자연의 순리를 돌이키는 움직임처럼 여겨진다.

<강금실 | 사단법인 선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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