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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을 뜻하는 영어 단어 ‘disaster’는 나쁘다(bad)라는 라틴어 ‘dis’와 별(star)이라는 뜻의 ‘aster’의 합성어이다. ‘별의 불길한 모습’, ‘하늘로부터 비롯된 해로운 영향’이라는 의미인 것이다. 이 단어는 재난 자체가 인간이 통제하기 쉽지 않음을 내포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는 이처럼 통제가 쉽지 않은 ‘재난의 일상화’에 직면하고 있다. 지구온난화 등 기후변화로 인해 자연재난은 더욱 빈번해지고 규모가 커지고 있으며, 메르스, 지카 바이러스 등 감염병과 신종·복합·대형재난도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재난 환경 속에서 지난 2014년 11월19일 국민안전처가 재난안전 총괄조정기관으로서 출범했다. 2년이 지난 지금, 재난안전은 대체되거나 포기될 수 없는 가치라는 신념이 확고해진다. 그간 다져온 재난안전의 기틀이 이제 지속가능형 재난안전체계가 되기 위한 조건들에 대해 생각해 본다.
먼저 협업 시스템의 지속성과 강제성이다. 그간의 경험들은 재난안전관리가 협업 없이는 어렵다는 것을 잘 말해주고 있다. 지난 2년 동안 안전정책조정위원회, 민관협력위원회,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등 협업 회의체가 작동되도록 의제를 발굴하여 논의하고, 정례화하는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런 결과 협업에 의무감이 확산되고, 협업체계에 대한 관성이 생겨났다. 이제는 협의를 위한 회의체 정례 개최, 주기적 안전발굴·상정, 기관경고 등을 통한 협업강제 등 협업시스템 유지·강화에 힘쓸 때이다.
다음으로 국민중심 재난관리 시스템의 강화이다. 재난 발생 시 자율적 역량을 가진 국민들의 저력이 진가를 발휘한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1995년 일본 고베 대지진 발생 시 구조대원보다 더 많은 인명을 구한 자원봉사자, 2007년 태안 기름 방제작업에 투입된 130여만명의 자원봉사자 등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러한 사례들의 공통점은 안전을 최우선에 두고 시간과 비용을 들여 스스로 훈련하고 대비하였다는 것이다. ‘국민안전교육진흥기본법’에 따른 생애주기별 안전교육, 안전신문고 확산, 훈련의 일상화, 국가안전대진단 등 다양한 정책이 중단 없이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재난안전관리의 과학화이다. 재난 발생 자체를 막기는 어렵지만 조기에 감지하고 신속하게 전파하면 피해는 최소화할 수 있다. 피해예측·조기경보시스템, 피해경감 기술, 상황공유 및 전파 시스템, 드론기술, 재난로봇기술, 빅데이터 분석 등이 재난관리에 활용될 수 있다. 재난관리 투자를 비용으로 볼 것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투자라는 인식의 대전환이 필요한 시기이다.
‘근심지무(根深枝茂) 원원유장(源遠流長)’이란 말이 있다. 뿌리가 깊을수록 가지가 무성하고 샘이 깊은 물이 더 멀리 흘러간다는 말이다. 재난관리에 딱 들어맞는 말이 아닐까 생각한다. 지금 만들어가고 있는 재난관리체계가 든든하게 뿌리를 내리고, 안전문화의 깊은 샘이 사방으로 퍼져 나갈 때 우리의 재난관리체계는 내년에도, 우리 다음 세대에도 지속가능해 질 것이다.
박인용 | 국민안전처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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