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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위가 계속되던 지난 늦여름, 해외 일정을 마치고 들어선 인천공항에서 ‘세상을 바꾸는 1000원’이란 글귀가 적힌 광고판을 마주했다. 궁금해 가까이 다가서니 그동안 나도 모르게 동참해온 1000원의 기부금이 있었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 국내에서 출발하는 국제선 항공권에는 1000원의, 국제적으로는 ‘항공권연대기여금’으로 불리고 국내에선 ‘국제빈곤퇴치기여금’으로 불리는 기여금이 포함되어 있으며, 이 돈은 아프리카의 빈곤퇴치를 위해 쓰이고 있다는 것이었다.
국내에 국제빈곤퇴치기여금이 도입된 게 2007년. 지난 9년간 봉사 활동을 위해 세계 각지를 빈번하게 오갔으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십수만원을 아프리카 빈곤퇴치에 보탠 셈이다. 외교부에 따르면 빈곤퇴치기여금으로 해마다 약 200억원이 조성된다고 하니 말 그대로 ‘티끌 모아 태산’이라 할 수 있겠다.
여러 차례 아프리카에서 흘린 땀과 틈틈이 기부해온 금액에 비하면 항공권으로 보탠 것은 미미한 노력, 적은 액수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거창할 것 없는 작은 행위, 즉 외국행 비행기에 탑승하는 행위가 물리적 거리를 넘어 또 다른 차원에서 지구 저편까지 닿고 있었음을 깨닫자 마음이 뜨거워졌다. 몇 차례 다녀온 그곳, 탄자니아 아이들의 모습이 떠올라서다.
탄자니아의 행정수도인 다르에스살람에서 약 10㎞ 떨어진 곳에 쿤두치라는 휴양지가 있다. 관광객을 위해 잘 갖춰진 휴양과 레저 시설 너머에는 뿌연 먼지에 휩싸인 바위산이 있다. 그곳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본래의 검은 피부 대신 회색빛을 띤 어린아이들이 돌을 깨는 장면을 마주하게 된다. 눈이 먼 청년조차 숙련된 손짓으로 돌을 깨고 나르는 모습은 신기하다 못해 경외심마저 들었다. 그곳 빈민촌 아이들이 인도양의 따가운 태양 아래 돌가루를 삼키며 손이 닳도록 일해 받는 품삯은 하루 1000원 남짓. 최소한의 연명을 위한 밥벌이 때문에 교육은 고사하고 기본적인 보건과 위생 환경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삶이다.
국제빈곤퇴치기여금이 바로 이렇게 빈곤과 사투를 벌이는 아프리카 곳곳의 환경을 개선하는 데 쓰인다니 더욱 반갑다. 국제빈곤퇴치기여금은 아동과 모성 사망률이 특히 높은 탄자니아, 우간다, 모잠비크 등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최빈국의 빈곤과 질병을 퇴치하는 사업에 쓰인다고 한다. 보건·위생에서 소외돼 생명을 위협받는 산모와 아이에게 안전한 출산 환경을 구축해주는 모자보건 지원이 주된 사업이라고 하여 더 뿌듯하다.
한때는 이들처럼 식민지와 전쟁 속에 황폐했던 우리나라도 국제사회의 원조하에 지독한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랬던 대한민국이 어엿한 경제대국으로 자리 잡아 지금은 개발도상국을 지원하는 나라로 거듭났다.
오는 25일은 대한민국이 2009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개발원조위원회(DAC)에 가입한 것을 기념하는 ‘개발원조의 날’이다. 온정의 미덕을 지닌 우리 국민들이 이날을 계기로 세계의 빈곤 문제를 상기하고, 우리나라가 국제사회에서 받은 수혜를 세계 곳곳에 되돌려주는 데 기쁜 마음으로 동참해주기를 소망한다. 또한 우리가 국제선을 탈 때마다 지불하는 1000원은 바로 그 1000원어치의 품삯을 위해 온종일 노동에 소비하는 빈곤층 아이들에게 더 나은 삶을 열어주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 세계를 잇는 항공권 속에 숨겨져 있던 1000원이 세상을 바꾸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박상원 한국국제협력단 홍보대사·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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