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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릿과의 새’ 하면 하늘의 제왕으로 불리는 독수리를 떠올리게 됩니다. 2m가 넘는 날개를 펴고 창공을 가르며 먹잇감을 찾는 매서운 눈매를 보면 그리 불릴 만합니다. 하지만 독수리의 겉모습과 속내는 완전히 다릅니다. 독수리는 사냥 능력이 없습니다. 전적으로 사체에 기대어 삽니다. 우리나라의 새 중 ‘수리’라는 이름이 붙는 새는 독수리 말고도 흰꼬리수리, 참수리, 흰죽지수리, 검독수리, 물수리가 있습니다. 독수리를 제외하면 모두 사냥 능력이 있으나 흰꼬리수리, 참수리, 흰죽지수리, 검독수리는 기회 사냥꾼입니다. 사체를 우선한다는 뜻입니다. 살아있는 것만 공격하는 진정한 맹금류는 물수리뿐입니다.
물수리는 이름 그대로 물고기를 잡는 수리입니다. 물고기를 잡는 매라 하여 한자 이름은 어응(魚鷹)이며, 언제나 ‘물고기 킬러’라는 별명이 따라붙습니다. 물고기를 사냥하는 새는 많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부리로 사냥하는 반면 물수리는 크고 날카로운 발톱을 사용하기 때문에 훨씬 더 큰 물고기를 잡을 수 있습니다. 검독수리, 참수리, 흰꼬리수리도 발톱으로 물고기를 낚아채는 것은 같습니다. 하지만 수면에 가까운 물고기를 사냥하는 것과 달리 물수리는 수심 1m까지 다이빙도 가능합니다. 수리과의 새들이 그렇듯 물수리는 국제적 보호조류며, 우리나라에서는 멸종위기야생동물 2급으로 지정하여 보호하는 귀한 새입니다.
물수리가 낚아챈 물고기를 움켜쥐고 수면 위를 비행하고 있다.
우리나라를 찾아오는 물수리는 대부분 시베리아에서 번식한 개체로, 10월 초순에 와서 11월 중순 즈음 떠납니다. 더러 겨울을 나는 개체가 있어 나그네새 또는 겨울철새로 분류합니다. 그런데 올해 제주도에서 첫 번째 번식 사례가 관찰되었습니다. 다섯 달에 걸쳐 두 마리의 어린 새를 성공적으로 키워낸 것입니다. 이제는 텃새로 분류를 해야 하는 것인지 호적 정리에 어려움이 생기기는 했습니다. 그렇더라도 가을은 물수리의 계절입니다. 우리 땅이 단풍으로 물들기 시작하면 우리나라 전역에서 물수리 모습도 보이기 시작합니다. 물수리의 출현 빈도가 높은 곳은 강과 바다가 맞닿는 기수역입니다. 기수역은 수심이 얕아 물고기 사냥에 유리하며 물수리가 가장 좋아하는 숭어가 모여들기 때문입니다. 산란을 앞둔 가을 숭어는 기름지고 살지기까지 합니다.
물수리는 아침 해가 떠오를 무렵부터 먹이사냥을 시작하여 해가 지기 직전에 활동을 멈춥니다. 물고기가 보이는 시간에서 보이지 않는 시간까지인 셈입니다. 물수리의 출현을 가장 먼저 알아차리는 것은 작은 새들입니다. 평화롭게 휴식을 취하던 오리 종류가 갑자기 날아오른다면 이미 물수리가 떴다는 뜻입니다. 물수리는 정지비행도 하지만 상공을 선회하며 먹잇감을 탐색할 때가 많습니다. 200m가 넘는 상공에서 물색과 비슷한 물고기를 감별하는 것을 보면 상상을 초월하는 시력입니다.
먹잇감의 존재를 확인하면 바로 날개를 접고 목표물을 향해 쏜살같이 돌진합니다. ‘내리꽂는다’는 표현이 딱 어울리겠습니다. 내리꽂는 순간의 속도는 무려 시속 140㎞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때, 물수리는 바람을 가슴에 안으며 먹잇감에 접근합니다. 바람을 등지면 바람에 떠밀려 목표지점을 정확히 타격하여 낚아챌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내리꽂음이 언제나 입수로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매섭게 내리꽂다가도 먹잇감의 상황이 바뀌면 접었던 날개를 펴고 방향을 바꿔 휙 떠오릅니다. 헛된 입수는 철저히 자제합니다. 내리꽂음이 입수까지 이어진다면 먹잇감을 낚아채기 직전에 취하는 동작이 있습니다. 발톱을 최대한 날카롭게 펼친 채 발을 뒤로 한껏 뺐다가 다시 앞으로 쭉 뻗어 먹잇감을 훌치며 움켜쥡니다. 발톱 밑에는 날카로운 가시들까지 있어서 한 번 움켜쥔 먹잇감이 빠져나갈 길은 없습니다. 이를 흉내 낸 것이 숭어를 잡는 훌치기 낚시입니다.
먹잇감을 훌치며 움켜쥐기 때문에 숭어무리를 공격할 때는 한 번에 여러 마리를 잡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횡재가 없는데 놀랍습니다. 양발에 하나씩 두 마리를 잡은 경우 둘 중 하나는 놓아줍니다. 큰 것 하나만 두 발로 제대로 잡아 챙깁니다. 한 발에 두 마리, 다른 발에 한 마리를 잡았다 하더라도 두 마리가 한 마리의 무게만 못하면 두 마리를 버립니다.
어린 물수리의 먹이사냥 간격은 평균 두 시간 정도며, 완전히 성숙한 물수리들은 큰 물고기를 노려 공격하기 때문에 3~4시간의 간격으로 먹이사냥에 나섭니다. 가족은 대체로 먹이활동을 할 때 같이 나타납니다. 하지만 개체마다 먹이활동 영역이 정해져 있습니다. 부모 새는 어린 새의 사냥터로 먹잇감이 가장 풍부한 곳으로 배정합니다. 쉽게 먹이도 구하면서 사냥술을 익히도록 배려합니다.
어른 새이든, 어린 새이든 먹이사냥을 할 때 공통점이 있습니다. 몰입입니다. 일단 목표가 정해지면 오직 그것만 본다는 것입니다. 다른 곳을 보는 일, 없습니다. 그럼에도 물고기 킬러 물수리의 사냥 성공률은 30%를 넘지 않습니다. 최선을 다했어도 10번 중 7번의 실패가 자연에서는 상식입니다.
김성호 | 서남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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