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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운전대를 잡는다. 한두번의 실랑이는 예고된 일. 자전거가 훅 지나간다. 대수로울 것 없는 일이지만, 못 보았냐며 한마디 한다. 이번에는 큰 돌덩어리가 보인다. 보고 있는 거냐고 한마디 다시 보탠다. 실은 나도 보지 못했고, 내가 운전해도 마찬가지라는 것, 나도 안다. 그러다가, 차가 도로의 언저리에 부딪혀 심하게 흔들린다.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쏘아붙인다. 그것 보라니까. 내가 말했지. 그리고 마치 정밀촬영이라도 해 둔 것처럼 충돌 상황을 파노라마같이 설명한다. 안다. 나도 보기는 했으나,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걸 인정하고 싶지 않아 목청만 높인다. 나는 알고 있었다면서.

11월9일 새벽, 트럼프의 당선이 확정되었을 때, 내 심리는 대략 이러했다. 갑작스러운 불안과 불확실에 흔들리면서, “거봐 내가 위험하다고 했잖아”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몇달 전 브렉시트 결정에 깜짝 놀랐을 때 내가 ‘흑조(black swan)’의 전조가 보인다고 이 칼럼에 적어 둔 것을 신속하게 기억해 냈다. 거기서 나는 세가지 탈출을 예고했는데, 첫째가 통상적인 좌우대립 정치구조로부터의 탈출, 둘째는 통상적인 경제학으로부터의 탈출, 셋째는 통상적인 ‘진보정책’으로부터의 탈출이라 했다. 딱히 나쁘지 않은 예측인 셈이고, 트럼프의 당선과 꽤 잘 맞아 떨어진다. 게다가 27년 전 오늘,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그것 보라니까.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하지만, 고백하건대, 나는 한번도 트럼프가 미국의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주위의 동료들이 걱정할 때마다, 나는 당당하게 경제학 좌우의 단결된 목소리와 세계 최고 수준의 데이터와 예측기법에 빛나는 투표예측 결과를 들어 “릴랙스”를 외쳤다. 세상의 모든 ‘합리적이고 양식 있는’ 사람들이 반트럼프를 외치고 있다는 연대감도 자신감을 키웠다. 한국인인 나는 미국인들을 안심시켰고, 그들은 내 말에 안도했다. 나의 위로에는 ‘분석적 근거’가 있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는 ‘개뿔 같은’ 분석이었지만.

나심 탈레브의 흑조이론은 예기치 않은 ‘조그마한’ 사건이 질서를 재편하는 엄청난 결과를 가져오는 현상을 말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런 사건을 대하고 분석하는 인간의 태도나 접근방식이다. 그 결과가 명백해지기 전까지는 일반적으로 이 사건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통계적 ‘잡음’ 정도로 치부한다. ‘잡음’이 의외로 커지면, 추정식 자체를 의심하기보다는 데이터를 의심한다. 이런저런 통계자료를 써 보면서 ‘잡음’을 줄여본다. 트럼프의 성공이 계속되자, 나도 공화당원 표본의 ‘어이없는’ 편이에 실소했다. 전국적이고 대표적인 표본이 열리면, 그들은 무거운 현실을 고통스럽게 마주하게 될 것이라 철석같이 믿었다.

그러다가 막상 그 사건이 판을 뒤집어엎는 ‘대사건’이라는 것이 명백해지면, 태도가 급속도로 바뀐다. 너나 할 것 없이 나서서, 그럴 수밖에 없었던 ‘필연적’ 이유를 찾아내느라 바쁘다. 이것저것 얽어서 분석틀도 만들어 낸다. 심지어 나는 이미 다 알고 있었노라고 하는 사람들도 나타나는데, 그 숫자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일종의 회고적 합리화다.

브렉시트 찬성 캠프와 트럼프 선거 캠프는 그동안 ‘반지성주의’로 비난받았다. 기본적인 사실이나 통계를 무시하고, 특정한 결과를 부풀렸다. 반대편에서 무수한 저명한 학자들을 동원해서 그것이 아니라고 해도, 지지층은 꿈쩍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의 ‘지성주의’도 만만치 않았다. 영국의 저명한 주간지인 ‘이코노미스트’는 트럼프 대통령 시대가 번영의 분배를 소홀히 한 대가라고 비난하지만, 정작 그들이 ‘분배’의 중요성을 목놓아 외친 것은 아주 최근의 일이다.

지난 9월 중국 항저우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수많은 지도자들은 세계화의 ‘역풍’을 염려하며 ‘포용적인 무역’의 중요성을 설파했다. 누구도 트럼프 얘기를 입에 담지 않았지만, 그의 당선을 막기 위해 ‘모든 시민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세계화로의 변신이 필요하다고 했다. 하지만 관료들이 협상하고 그들이 채택한 정상선언문에는 자유무역 보장과 보호주의 철폐만 강조되었다.

미국 대선 직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19명이 트럼프를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그들은 ‘근거 기반 정책결정’(evidence-based policy making)을 중시했지만, 그들의 경제학은 세계화의 역풍이 시민의 일상에 미치는 분석을 여전히 부수적으로 생각해 왔다. 트럼프 지지층의 사회경제적 곤란에 대한 언급조차 없던 이 성명서는 그저 클린턴이 더 똑똑하다는 뜻으로 읽혔을 것이다. 사실, 믿지 않겠다고 작정하면, 믿지 않을 이유는 넘쳤다. 경제학의 최고지성이 2008년 경제위기를 예측하지 못했다는 놀림은 의외로 파급력이 컸다. 이제, 트럼프 당선이라는 대사건을 예상하지도 못했으니, 졸지에 ‘헛똑똑이’로 확정된 셈이다.

설상가상으로 370명의 경제학자들이 연이어 내놓은 성명서는 세계화와 무역의 문제를 따지면서 이렇게 말했다. “트럼프는 무역협정이 국민소득과 부를 잠식한다고 말하면서 대중을 호도하고 있다. 물론 그 혜택이 균등하게 분배되지는 않았고 이것 자체가 중요한 논의 대상이지만, 1980년 이래로 평균 소득과 평균 부는 상당히 증가했다.” 저쪽은 분배효과를 따지자는데, 이쪽은 평균효과만 내세우는 꼴이다. 이쪽의 ‘지성’으로 저쪽의 ‘반지성’을 따지기가 궁색하다.

트럼프 시대의 ‘반지성주의’는, 사람들이 봐 달라고 하는 것들을 외면하거나 서둘러 의례적으로 답하는 ‘지성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도발이다. 트럼프 시대의 불확실성도 부분적으로 여기에 기인한다. 그동안 ‘지성’에 기대어 확립된 ‘정치적 올바름’도 그들에게는 거추장스러운 위선일 뿐이다. 그 결과는 엄혹하다. 무엇보다도, 인류가 피 흘리며 쌓아 올린 인권과 평등의 정신이 절대 위기에 처했다. 이를 지키는 싸움이 우리의 절대명제이다. 그러려면, 우리의 ‘고고한 지성’도 변해야 한다. 그들과 대화하는 방법부터 찾아야 한다. 그들이 궁금해하는 것을 분석하고 명백한 언어로 답해야 한다. 트럼프는 미국에만 있지 않고, 세계 곳곳에 숨죽이며 때를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나는 안다. 운전하는 아내에게 잘난 척 ‘지성’을 뽐내봐야 내게 돌아오는 것은 싸늘한 멸시의 눈빛뿐이라는 걸.

경제학 박사·‘우리는 조금 불편해져야 한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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