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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영 선생과 그 형제들은 대한민국의 법통을 이어온 독립운동의 대부이다. 가문의 명예와 전 재산을 바쳐서 애국애족의 정신과 삶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준 우리 민족의 위대한 스승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시대 영의정을 지낸 백사 이항복의 10대손 6형제 중 넷째인 이회영 선생께서는, 1905년 을사늑약에 이어 1910년 한일병합으로 나라가 패망에 이르자 국내 독립운동의 한계를 절감하고 세 분의 형들과 두 분의 아우들을 설득하여 전 재산을 비밀리에 처분하였다. 그리고 6형제의 전 가족 60여명과 함께 그해 12월 만주로 집단 망명하였다.

당시 처분한 재산은 40만원 정도라고 하는데, 근래 학자들이 추산한 바에 의하면 1969년 물가기준으로 약 600억원, 2013년 기준으로 약 2조원에 해당된다. 이 돈은 온전히 최초의 독립군 양성학교인 신흥무관학교를 세우고 운영하는 데 사용되었다. 신흥무관학교는 10년간 약 3500명의 독립군 장교와 병사들을 양성하였다. 이들은 봉오동전투와 청산리전투의 주역들과 훗날 광복군의 중심인물들이 되어 일본의 침략에 맞서 투쟁하였다.

6형제는 신흥무관학교 운영에 전 재산과 열정을 다 쏟아부었기 때문에 10여년이 지난 후에는 결국 빈손이 되어 중국 각지에 흩어졌다. 그러면서도 끝까지 독립투쟁을 하였다.

첫째 이건영 선생은 만주 땅에서 얻은 질병으로 광복 전 일찍 타계하였고, 둘째 이석영 선생은 조선 10대 갑부 소리를 들으며 신흥무관학교 운영자금의 대부분을 감당하였으나 전 재산과 함께 두 아들마저 독립전선에서 전사하여 대(代)가 끊어진 채 중국 상하이의 빈민가에서 국수와 비지로 연명하다가 영양실조로 외롭게 별세하였다. 셋째 이철영 선생은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풍토병으로 광복 전에 사망하였다.

그리고 형제들의 정신적 지주역할을 하던 넷째 우당 이회영 선생은 독립운동 지도자로 활동하다가 왜경에 체포되어 1932년 11월17일 안중근·신채호 선생 등 많은 독립지사들이 순국한 뤼순 감옥에서 재판도 없이 모진 고문을 받다가 순국하였다. 형제 중 유일하게 생전에 중국에서 광복을 맞은 다섯째 이시영 선생은 임시정부시절부터 같이한 김구 선생과 함께 귀국하여 대한민국 초대 부통령을 역임하였고 신흥대학(현 경희대학교)을 설립한 후 1953년 한국전쟁 중에 별세하였다. 여섯째 이호영 선생은 만주에서 의병으로 활약하던 중 일본군의 습격으로 가족 전체가 함께 몰살당하여 시신도 찾지 못했다고 한다.

서울 명동성당 정문 앞 골목 안쪽에 이회영 선생 6형제의 생가 터가 있다. 망명 당시 다른 재산을 비밀리 매각하고 떠났으나 6형제가 태어난 이 99칸 저택은 일본감시망에 드러날까 봐 처분하지 않았기 때문에 총독부에 그대로 접수되어 해방 후 적산으로 있었다. 정부 수립 후 이승만 대통령이 다섯째 이시영 부통령에게 명동의 생가 터와 재산을 환원하겠다고 제안하였으나, 이시영 선생이 “한번 민족에 바친 것이니 되받을 수 없다”며 사양했다는 일화가 남아있다. 생가 옆 길가에 우당 이회영 선생의 흉상과 6형제 생가 터라는 표지석이 세워져 있지만 초라하고 잘 보이지도 않는다.

지난 4월 서울시는 ‘우당 6형제 생가 복원 및 기념관 조성 기본구상 용역’을 줬다. 시는 “용역을 통해 우당 6형제가 살던 생가와 그 내부 구조에 대한 자료를 꼼꼼히 모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생가를 복원해 기념관을 짓더라도 원래 있던 명동 YMCA 자리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서울 시내 다른 장소도 고려하게 될 것이라는 게 서울시 설명이었다.

생가 복원 및 기념관 조성 계획은 뒤늦은 감이 있지만 크게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시는 좀 더 적극적으로 우당 6형제의 생가를 원래 자리에 복원할 수 있는 방안을 비롯해 보다 사실적이고 정밀한 재현에 심혈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현재 종로구 신교동에 ‘우당기념관’이 있으나 공간의 규모나 위치상 명분이 상당히 미흡하다. 역사 속에 묻혀있는 우당 이회영 선생 6형제 가문 독립운동사의 진실과 가치를 밝혀 이 민족의 교훈과 사표로 삼고 그 희생을 기념하는 일을 제대로 한다면 그 결과로 나타나게 될 유형, 무형의 효과는 우리 역사와 세계사에 비교할 수 없는 거룩한 유산으로 남게 될 것이다.

<이주홍 | 인천 하나비전 성극팀 작가 및 연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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