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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자영업자들의 고통을 전하는 기사를 읽으면서 김금순씨(가명)가 떠올랐다. 2005년 9월 ‘대형할인점의 빛과 그림자’란 기획취재를 할 때다. 김씨는 서울 은평구 응암동에서 조그만 구멍가게를 했다. 이마트 은평점과 200m 떨어진 김씨 가게는 당시 그 주변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곳이었다. 아니 가게는 ‘죽어가고’ 있었다.

김씨는 서른여덟부터 20년을 한곳에서 장사했다. 큰돈은 못 벌었다. 집 한 채 사지 못했다. 겨우 먹고살았다. 이마트가 생기고 매출이 절반가량 떨어졌다. 신선식품과 잡화 판매부터 차츰 줄더니 담배하고 냉장 음료수만 간신히 팔렸다. 담배나 냉장 음료수는 이마트 은평점이 취급하지 않는 품목이었다. 그는 “이마트 총각이나 아줌마들이 우리 가게로 일부러 와서 음료수니 담배니 팔아줘서 고맙다”고 했다. 이마트 직원들은 김씨 가게를 ‘작은집’이라고 부른다고도 전했다. ‘작은 연대’로 버티기엔 시절이 엄혹했다.

김씨는 다가올 겨울을 걱정했다. 인터뷰 막바지 막내 등록금을 걱정하던 그의 얼굴은 서글픈 울음과 선한 웃음이 뒤섞인 눈물로 범벅돼 얼룩졌다. 인터뷰가 실린 신문을 갖고 찾겠다고 약속했지만, 지키지 못했다. 두고두고 후회되는 ‘거짓말’ 중 하나다.

최근 김씨 가게를 찾으러 응암동에 갔다. 기억의 자리에 가게는 없었다. 단팥빵 하나를 500원에 팔며 고군분투하던 어느 빵집 주인은 “응암동에 구멍가게가 하나도 없는 걸로 안다”고 했다.

애초 살아남았으리라 기대하지 않았지만, 그 부재를 직접 확인하는 순간 안타까운 마음이 밀려왔다. 김씨 가게 자리엔 주상복합 건물이 들어서 있었다. 6호선 응암역 주변도 마찬가지였다. 역세권의 여러 주상복합 건물 1층 곳곳은 대기업 편의점과 프랜차이즈들이 들어섰다.

내쳐진 이들의 자리로 들어온 이들의 삶도 편치 않다. 편의점과 프랜차이즈 업주들도 최저임금 인상의 타격을 받았다. 여러 업주들이 최저임금 인상 거부 운동까지 벌인다. 불경기 속 높은 임대료와 가맹점비에 닥쳐온 최저임금 인상은 3중·4중고를 일으킨다. 이 와중에 ‘기득권’은 지금 세상의 모든 문제의 근원을 최저임금’으로 환원한다. ‘빨갱이’ 자리에 ‘최저임금’을 대입한다. 일부 임대료·가맹점비 인하를 미담으로 섞어 최저임금을 공격한다. 젠트리피케이션은 없던 일로 만들어버린다. ‘신자유주의’로 부르던 시기와 ‘헬조선’이라 지칭하는 시기를 관통하며 드러난 문제가 무엇인지는 침묵하거나 외면하고, 왜곡한다.

김씨 가게는 1인 가게였다. 6월 현재 김씨처럼 고용원이 없는 자영업자가 전체 70%가량이다. 영세 1인 자영업자들의 폐업이 많다. 이들이 몰락한 자리에 대형 프랜차이즈가 들어온다. 본사는 가맹점 옆에 또 다른 가맹점을 내주며 잔인하게 경쟁시킨다. 프랜차이즈 사장님은 자영업자인가? 노동계 일각에선 자율·자유가 없는 이 자영업을 ‘은폐된 고용’으로, ‘사장님’을 본사에 속한 노동자로 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씨 가게의 사라짐과 편의점, 프랜차이즈의 범람은 2005년 이후 14년간 세상의 변화를 응축해 보여준다. 이 변화는 체제와 구조의 문제다. 영세 자영업자들의 보증금과 임대료는 어디로 흘러간 것일까? 고용 불안정 속에 가게를 만드느라 써버린 퇴직금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018년 통계를 보면, 한국의 임금불평등은 증가 중이다. 상위 4대 기업집단 지배율은 높아졌다. 상위 10% 재산도 늘어난다. ‘낙수 효과’는 대체 어디서 일어났는지 알 수 없다. 저소득층인 1~2분위는 2017년 4분기에서 2018년 1분기로 오면서 경상소득 증가율이 마이너스로 떨어졌다. 상대적 고소득층인 3~5분위는 증가율이 상승 추세다.

최저임금을 둘러싼 논란은 곧 정치의 문제고, 이데올로기의 문제다. 적폐를 철폐하겠다는 정부는 규제를 철폐하겠다고 한다. 규제 철폐와 신기술 개발, 신규 고급 일자리 창출이 ‘대한민국’을 먹여살릴 것이라고 낙관한다.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은 2016년 5월 발의됐지만 2년 넘게 국회서 계류 중이다. ‘테러방지법 반대’로 울부짖던 이들은 집권하고도 법안 폐지 발의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다. 상가임대차보호법은 연말에나 본회의에 상정될 것이라는데, 그 법안도 김씨의 삶처럼 언제 뒷전으로 밀려날지 모를 일이다.

‘퀴 보노(Cui Bono, 누가 이득을 보는가).’ 키케로(BC 106~BC 43)의 말이다. 한국의 수많은 ‘김금순씨’가 이득을 볼 날이 올 수 있을까?

기업 이윤을 강조하는 공직자들, 상가를 소유한 여러 국회의원 얼굴이 떠오른다.

<김종목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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