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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프랑스 외무장관을 지낸 기 소르망은 국립중앙박물관 특별강연에서 “한국의 문화적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해서 정부보다는 비영리단체가 나서야 한다”고 했다. 기 소르망의 강연 내용을 제쳐두고서라도 오늘날의 선진국들을 보면 정부의 기능은 점점 약화되고 있는 반면 비영리조직의 역할은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지방자치단체들이 박물관을 건립해 예산을 낭비한 사례가 언론에 나온 지 이미 오래됐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정책발표에 따르면 지자체가 설립한 공립박물관은 대형화에도 불구하고 전시자료는 턱없이 부족하며, 건립 후에는 전문인력과 운영예산 확보가 어려워 박물관의 부실운영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공립박물관들의 문제점에 대한 조처로 정부는 지자체의 박물관 사전평가제와 사후감리를 받도록 발표했다. 하지만 지자체는 선거철만 되면 박물관을 업적주의, 장식 공약의 산물로 만들어 혈세를 낭비하고 있다. 물론 지자체마다 꼭 필요한 박물관은 충분한 수요조사와 공청회를 거쳐 타당성이 있다면 반드시 신축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공립박물관들은 건립에만 관심이 있고 건립 후에는 운영비만 축내는 ‘돈 먹는 하마’로 전락하고 있다.
군산근대역사박물관(출처 : 경향DB)
이런 식으로 지자체들이 재정을 생각하지 않고 무분별하게 박물관을 신축하다보면 미국의 디트로이트시나 일본 유바리시의 경우처럼 지자체 파산 사례가 나올지도 모를 일이다. 다행히 일부 지자체들은 박물관 건립을 시도했지만 해당 시의원들이 중복투자와 예산낭비로 여겨 건립비의 일부를 기존 인프라가 형성된 정부등록 비영리사립박물관에 지원해 예산을 절감하고 지역민에게 문화적 혜택을 주고 있다. 정부등록 비영리 사립박물관이란 공립박물관과 운영주체만 다를 뿐 둘 다 비영리조직으로 공익을 위해 운영된다는 점에서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따라서 국가는 비영리조직에 최소한의 재정지원이나 감독 시스템만 가지고 그 외는 비영리조직이 주체가 되어 운영하면 예산을 크게 절감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박물관의 규모나 외관만으로 박물관을 평가하는 경향이 많다. 이러한 평가기준은 유물을 눈으로만 보는 시대에나 있는 것으로 박물관에서 창의적이고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경험하는 오늘날에는 맞지 않다. 선진국들은 박물관을 학교와 같은 기능을 수행하는 곳으로 인식, 관람자들은 주정부의 인증마크를 보고 박물관을 평가한다. 앞으로 우리나라도 정부등록 비영리박물관이 공립박물관 역할을 수행할 것이다. 따라서 어떤 정책이 예산을 절감하면서 해당 지역주민에게 문화적 혜택을 줄 수 있을지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이다. 예로부터 우리나라는 비영리민간조직 격인 서당이나 서원이 국립인 향교와 성균관과 선의의 경쟁을 하면서 백성들에게 고급문화들을 알렸다.
박종락 | 금오민속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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