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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

[기고]전관예우의 본질

opinionX 2015. 6. 11. 21:00

법조윤리를 연구하는 학자의 입장에서 볼 때 ‘전관예우’는 대한민국 사법제도의 가장 큰 문제이다. 재판은 당사자의 공정한 권리 구제를 통해 미시적 정의를 실현하는 과정이고, 이러한 미시적 정의가 모여 거시적 정의가 실현된다.

그런데 전관예우는 ‘전관’에게 사건을 맡길 수 있는 ‘돈’과 ‘권력’이 있는 자에게 유리한 재판이 진행될 수 있다. 이처럼 전관예우로 인해 재판이 공정하지 않게 되면 정의가 실현될 수 없어 사법제도의 근간이 무너지게 된다.

변호사법은 전관예우를 근절하기 위하여 여러 규제를 하고 있으나, 그러한 규제에도 불구하고 전관예우는 계속 존재하는 것 같다. 법조윤리협의회 전문위원으로 활동한 경험에 의하면 판사 출신 변호사는 6개월간 평균 100건 정도를 수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참고로 서울 지역 변호사는 월평균 1.9건을 수임한다. 안대희, 황교안 두 국무총리 후보자의 청문회 과정에서 드러난 엄청난 수임료와 월급도 전관예우가 아니면 설명하기 힘들다. 검사장으로 재직하다 퇴임한 홍모 변호사의 경우에는 2013년 월평균 7억6000만원을 번 것으로 드러났다. 이러한 문제로 인해 최근 대법관·헌법재판소 재판관이 영리 목적으로 사건수임을 하지 않는 대신 일정액을 지급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법안이 발의되기도 했으나, 이것이 전관예우를 근절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전관예우 해결의 출발점은 전관예우의 본질을 살펴보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전관예우는 그 행위의 주체가 전관 변호사가 아니라 판사·검사이다. 전관예우의 본질은 변호사의 문제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법원·검찰의 문제인 것이다. 따라서 전관예우는 판·검사가 전관 변호사를 우대할 수 없도록 통제하고, 전관예우를 하는 판·검사에게 불이익을 주어야만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있다. 전관예우에 대한 법원·검찰의 공식입장은 ‘전관예우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국민들이 전관예우를 굳게 믿고 있고, 전관 변호사는 이를 적절히 이용하여 고액의 수임료를 받을 수 있는 구조가 형성되었다는 점이다. 변호사인 필자조차도 친족에게 전관 변호사 선임을 권유한 경우가 있으니 일반 국민들은 더 말해서 무엇할까 싶다. 따라서 전관예우는 사법과정에서 전관예우가 없다는 점을 법원·검찰이 적극적으로 입증하고, 국민이 이를 납득해야만 해결될 수 있다.

이를 위해 법원·검찰에 제안하는 것은 전관예우 해결을 위해 사법과정에 ‘공시제도’를 도입하라는 것이다.

전관예우 해결의 걸림돌은 전관예우가 눈에 보이지 않는 ‘유령’ 같은 존재라는 것이다. 따라서 판·검사와 변호사의 관계가 사법과정에 미친 결과를 누구나 알 수 있는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은 전관예우 해결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구체적으로 공개되는 정보는 판사·검사와 변호사의 관계, 변호사 수임료, 재판 결과, 형사사건의 경우 동종 사건과의 판단 결과의 차이 등이 될 수 있고, 이러한 정보를 공개하면 판·검사가 자기가 취급한 사건에서 특정 변호사를 봐주고 있는지를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다.

역대 전관예우 논란 고위 공직 후보자 목록 (출처 : 경향DB)


이와 같이 전관예우의 존재가 드러날 가능성을 높이는 공시제도는 판·검사가 자율적으로 전관예우를 자제하게 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그리고 법원·검찰은 공개 정보를 바탕으로 전관예우의 존재 여부를 밝혀내고 이를 판·검사의 인사에 반영해야 한다. 전관예우를 한 판·검사는 징계해야 하고, 재임용을 거부해야 한다. 변호사단체, 법조윤리협의회 및 시민단체도 공개되는 정보를 바탕으로 적극적으로 전관예우 존재 여부를 밝혀내고 이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해야 한다.

자유주의 정치체제에서 공정한 재판제도는 정부의 존재 이유이다. 이와 같이 전관예우는 정부의 존립과 직결된 것이므로 반드시 근절되어야 하며, 전관예우를 근절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판·검사가 전관예우를 할 수 없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손창완 | 연세대 로스쿨 교수·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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