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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

[여적]가뭄과 장마

opinionX 2015. 6. 11. 21:00

가뭄은 가장 무서운 재난이다. 지진이나 홍수와 같은 천재지변은 요란하지만 단발적인 반면 가뭄은 조용하지만 지속적이다. 가뭄은 나라를, 문명을, 나아가서 인류라는 종의 명줄까지 좌우할 수 있다. 실제로 왕조의 멸망이나 혁명, 전쟁 등 역사의 대변화에서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비롯한 고대의 가장 우수했던 문명의 붕괴, 호모 사피엔스의 ‘아웃 오브 아프리카’에 이르기까지 가뭄은 그 방아쇠 역할을 했다.

동아시아 몬순 기후 영향권에 있는 한·중·일 3국은 봄 가뭄을 극복하는 것이 가장 문제다. 역사의 흥망성쇠가 거기에 달려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긴 가뭄 끝에 찾아오는 초여름 장마는 최고의 해결책이었다. 전체 강수량의 30% 이상이 집중되는 이 시기를 중국에서는 메이유, 일본은 바이우라고 부른다. 한자로 매우(梅雨)라고 쓴다. 양쯔강 상류의 매실이 익을 무렵에 시작되는 비라고 해서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우리는 조선조에 임우(霖雨)라는 표현을 주로 썼다. 조선왕조실록을 검색하면 매우라는 표현이 3회, 음우(淫雨)가 61회 나타나는 데 비해 임우는 231회나 등장한다. 지금의 장마라는 표현은 오랜의 한자어인 ‘장(長)’과 비를 뜻하는 ‘맣’의 합성어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강원 춘천시 동면의 한 저수지가 11일 극심한 가뭄으로 거북이 등처럼 갈라진 바닥을 드러냈다. (출처 : 경향DB)


올해 봄 가뭄이 심상찮다. 수도권과 강원지역의 누적 강수량이 평년치의 60%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주요 댐 저수량이 20%대에 그치고 이미 바닥을 드러낸 저수지도 수두룩하다고 한다. 전국 곳곳이 바짝 타들어가고 있지만 시원한 비소식보다 나쁜 소식이 더 많이 들린다. 기상청은 올 장마가 늦어져 7월이 돼야 시작될 것이라고 한다. 그나마 장마전선을 밀어올리는 북태평양 고기압 세력이 약해 중부지방까지 올라올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보고 있다. 엘니뇨의 영향으로 마른장마가 이어질 것이라고도 한다.

늦장마와 마른장마는 거의 연례적이라고 할 정도로 최근 자주 나타나고 있다.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한반도가 아열대성 기후로 바뀌고 있어서일까. 동아시아 몬순 기후의 특징인 장마가 약화되거나 사라지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시원한 장맛비를 한반도 깊숙이 끌고올 방도가 어디 없을까.

신동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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