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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 정부의 조직 개편에 대한 논의가 나오고 있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일어나는 일이라 새로울 것은 없다. 하지만 이번 조직 개편은 상황이 좀 다르다. 역사상 유례가 없었던 대통령의 탄핵 인용과 조기 대선, 그로 인해 대통령을 비롯한 차기 정부의 준비 기간이 매우 짧은 상황에서 논의되는 조직 개편은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로 하여금 또 다른 ‘창조경제’를 창조하는 설익은 조직이 만들어질까 우려하게 만든다.

학계와 야당이 주최한 몇몇 토론회들은 ‘방송통신융합’ ‘정보통신기술(ICT) 진흥’ ‘4차 산업혁명’ 등을 차기 정부 조직 개편의 키워드로 제시하고 있다. 디지털 환경하에서 방송과 통신의 융합은 그 성과에 대한 갑론을박에도 불구하고 이미 피할 수 없는 선택지가 되었다. 인공지능 및 로봇 기술과 직결되는 4차 산업혁명의 결과물들이 미래의 주요한 먹거리가 될 것이라는 것 또한 합리적으로 예측 가능하며, 이를 위해서는 ICT가 발전해야 하고 산업의 각 영역에 이것이 유기적으로 접목되어야 한다는 데에도 이견이 없다.

그러나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이러한 기술적, 형식적 환경에 대한 고려 외에 과연 내용적 환경, 즉 콘텐츠에 대한 고려는 이루어지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불과 몇 년 전 TV 시장의 신천지로 각광받던 3D TV는 어느덧 몰락의 길을 걷고 있다. 3D 안경이 주는 이물감을 자발적으로 극복할 정도의 킬러 콘텐츠가 부재했던 것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예를 들어 3D TV 붐에 직간접적으로 큰 영향을 끼친 영화 <아바타>의 흥행은 대단히 흥미로운 이야기와 첨단 특수효과로 멋스럽게 포장된 영상미, 즉 콘텐츠의 우월성이 3D 버전의 흥행을 유도한 것으로 평가하는 게 합리적일 것이다. 재미없는 콘텐츠를 3D로 관람하기 위해 일반 영화의 두 배 가까운 관람료를 지불하고 불편한 안경까지 착용하는 비합리적인 관객을 가정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기술적 환경과 콘텐츠가 부합하지 않으면 결국 그 기술력은 무용지물이 된다. 3D TV가 TV 시장을 장악했을 때 가전 매장에서는 3D 기능이 없는 TV를 찾기도 어려웠다. 불과 몇 년이 지난 오늘 각 가정의 3D TV는 2D 기능만을 수행하고 있으며 그 옆에서 안경에는 먼지만 쌓여가고 있다. 소비자의 지갑에서 쓸데없는 돈이 나간 것이고 이는 곧 국가적 낭비가 아닐 수 없다. 조금 더 지켜볼 일이지만 가상현실(VR)이라는 기술 또한 현재 발전과 몰락의 기로에 서있는 듯하다. HMD(Head-mounted Display)라고 불리는 영상재현장치를 머리에 뒤집어쓰고 콘텐츠를 감상하거나 게임을 즐기는 VR에 대해 어떤 이들은 3D 안경이 주는 것만큼이나 혹은 그보다 더한 어지럼증을 호소하기도 한다. 새로운 기술적 환경은 이러한 신체적 부적응을 포함한 문화적 충격을 생산한다. 사용자가 불편함을 감수할 만큼의 효용성 높은 콘텐츠의 개발이야말로 이 충격을 최소화하고 궁극적으로 제거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일 것이다. 콘텐츠와 함께할 수 없다면 기술은 도태되고 국가적 낭비, 국민적 손해는 되풀이된다. 기술과 콘텐츠는 함께 발전해야만 한다. 이공계와 인문사회계 또한 균형 있는 투자가 이루어져야만 하며 이과와 문과 또한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5년마다 부처가 바뀌고 정책의 방향이 바뀌고 대한민국의 향방이 달라진다. “또?”, “이렇게 자주 바꿀 걸 애초에 좀 제대로 만들지!”라는 말들을 5년에 한 번씩 하고 산다. 지난 정부의 공과 과를 밝혀 성과가 낮았던 부처를 폐지·축소 내지는 유관 부처와 통폐합하고 성과가 높았던 부처가 더 힘을 낼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주는 일은 꼭 해야 하는 일이다. 국가 전체가 구조조정 중인데 정부 조직 또한 예외일 수 없음도 자명하다. 그래서 정부 조직 개편 이야기가 나오면 공무원뿐 아니라 온 국민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염려한다. 기술혁명만큼이나 콘텐츠의 중요성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방송, 영화, 게임, 애니메이션 등 미디어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 미디어 콘텐츠의 진흥이 곧 다가올 4차 산업혁명의 성패를 좌우할 열쇠이기 때문이다.

류재형 | 한림대 교수·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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