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국내 프로야구나 미국 메이저리그 TV중계를 보면 구단주가 관중석에서 경기를 관람하는 광경이 가끔 눈에 띈다. 구단주도 ‘열정적인 팬’인지라 팀 선수들이 실책을 범할 때 안타까운 표정을 짓지만 적어도 야구장 안에서는 그뿐이다. 그런데 선수들의 플레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구단주가 선수들을 일시에 더그아웃에 불러들여 경기를 중단시킴으로써 수만명의 관객에게 손해와 불편을 끼친 것에 비유할 수 있는 사건이 발생했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장녀인 조현아 대한항공 부사장이 기내 서비스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미 출발한 비행기를 되돌려 승무원을 내려놓은 어처구니없는 일이 바로 그것이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조 부사장은 지난 5일 0시50분 뉴욕발 인천행 대한항공 KE086편 일등석에 타고 있다가 견과류 서비스를 매뉴얼대로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승무원과 승무원 사무장에게 일등석과 붙어있는 이코노미석에까지 들릴 정도로 고함을 질렀다고 한다. 이미 10분 동안 활주로를 이동 중이던 비행기는 조 부사장의 지시로 급정거한 뒤 게이트 쪽으로 후진해 사무장을 내려놓았고, 사무장은 12시간을 기다렸다가 귀국했다는 것이다. 결국 조 부사장이 탔던 비행기의 승객 400여명은 객실 안전과 서비스를 책임지는 승무원 사무장 없이 10여시간을 ‘안전무책임지대’에 머물렀던 셈이다. 아무리 항공사의 ‘오너’라고 하지만 자신에 대한 서비스를 문제 삼아 수백명 승객이 탑승한 항공기를, 그것도 이미 출발한 상태에서 되돌려 승무원을 내쫓았다니 할 말을 잃을 뿐이다. 만일 그 과정에서 사고라도 발생했더라면 과연 그 책임을 어떻게 지려고 했던 것인지 모골이 송연하다.

이번 사태의 중심에는 조현아 대한항공 부사장이 있다. (출처 : 경향DB)


조 부사장의 이러한 행태는 그를 비롯한 ‘오너 일족’들이 수백명 승객들의 인명을 책임지는 항공기를 자신의 개인 소유물쯤으로 여기는 그릇된 의식구조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본다. “평소에도 오너 집안의 이런 횡포가 자주 있었다”는 대한항공 조종사노조의 지적이 이를 입증한다. 국토부는 조 부사장의 행위가 “항공기 승무원에 대한 지휘·감독은 기장이 한다”고 규정한 항공법을 위반한 만큼 진상을 철저히 조사한 뒤 법에 따라 조치해야 한다. 조 부사장은 승객들과 국민에게 진심으로 사과한 뒤 즉각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 그것이 견과류 서비스와 승객들의 안전을 맞바꾸고, 국적항공사와 국가의 이미지에도 먹칠한 중대한 과오를 조금이나마 씻어내는 길이다.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4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