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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송학원 소속인 한림대 성심병원 간호사들이 재단체육대회에 동원되어 선정적인 춤을 추도록 요구받았다는 호소가 잇따르고 있다. 시민단체인 ‘직장갑질 119’의 카카오톡 채팅방에는 간호사들이 해마다 ‘일송가족의 날’ 장기자랑 코너에 짧은 바지나 배꼽티 차림으로 춤을 추는 동영상과 함께 그동안 자행된 인권침해 사례를 쏟아내고 있다.

이들은 긴 테이블에 앉아있는 재단의 고위인사 앞에서 짧은 의상을 입고 어떻게 하면 유혹적인 표정과 제스처를 지을 수 있는지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하기 싫다고 하면 “유난을 떤다”는 식의 핀잔을 들었다. 장기자랑에 참여하지 않은 간호사들도 근무를 마친 뒤 응원연습에 동원됐다. 병원 측은 해마다 열리고 있는 재단행사 중 하나인 장기자랑에서 간호사들이 그런 인권침해를 당했는지 몰랐다고 해명했다.

간호사는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선 환자들을 최일선에서 돌보는 전문 의료인이다. 자칫하면 의료사고에 노출될 수 있는 고위험 직업군이다. 더욱이 병 때문에 약해진 환자들의 투정까지도 늘 웃는 낯으로 대해야 하는 ‘감정노동자’들이다. 그럼에도 만성적인 인력부족 때문에 임신 및 육아까지도 남편이 아닌 동료와 상의해야 할 정도의 열악한 근무환경에 시달리고 있다. 환자의 생명과 직결되는 업무에 몰두하고, 나머지 자투리 시간을 쪼개 휴식을 취해야 할 판에 해마다 재단 체육행사에 참석해서, 그것도 선정적인 춤까지 춰야 했다. 이것은 관행이라는 미명 아래 절대 용인될 수 없는 일이다.

간호사들의 고발과 병원 측의 해명은 한국 사회가 조직 내 인권침해 문제에 얼마나 무지몽매한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장기자랑인데 뭐 어떠냐는 인식은 여성을 눈요깃감으로 표현해도 아무런 죄의식 없이 받아들여지는 시대착오가 여전하다는 사실을 웅변해준다. 싫으면 거절하면 되지, 왜 끌려다니다가 이제와 고발하냐는 시선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남이 아닌 제 자식, 제 손녀가 당한 이야기라면 이런 몰염치한 말을 생각 없이 툭툭 내뱉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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