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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저녁이었다. 선선한 바람을 맞으면서 친구를 기다리는데 어디선가 듣기 좋은 음악이 흘러나왔다. 저절로 고개가 까딱였고, 발이 움직였고, 손가락이 다리를 두드리며 박자를 맞췄다. 사람들이 흘끔흘끔 볼 테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음악이 사람을 움직이는 건 흔한 일이니까. 어쩌면 수십만~수백만년 전, 인류의 조상이 서툴게 직립 보행을 하던 시절부터 음악은 움직임과 함께 진화해 왔으니까.

■ 직립 보행과 발성

스티븐 미슨의 책 <노래하는 네안데르탈인>에 따르면, 직립 보행으로 해부 구조가 변하면서 발성의 진화를 촉진시켰을 수 있다고 한다. 네 발로 걸어다니는 동물들은 척수가 뇌 뒤쪽에서 머리 안쪽으로 간다. 하지만 직립 보행을 하면 척수가 뇌 아래쪽에서 머리 안으로 들어가야 해서 척수와 입 사이에 후두가 있을 공간이 줄어든다. 이 때문인지 현생 인류의 후두는 침팬지의 후두보다 훨씬 더 아래쪽에 있다. 이렇게 후두의 위치가 낮아지면 성도의 길이가 늘어나 성도가 만들어낼 수 있는 소리가 더 다양해진다고 한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현생 인류는 여타 유인원들과 후두의 구조도 다르다. 침팬지와 같은 유인원은 나무를 타고 내릴 때 팔을 많이 사용한다. 이렇게 팔 힘을 사용하려면 흉곽 안쪽의 공기 압력이 팽팽하게 버티면서 지지대가 되어주는 편이 유리하다. 공을 던질 때 순간적으로 숨을 참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인간이 아닌 영장류들은 공기를 채워서 잠그기 좋게 두툼한 연골성 후두를 가지고 있다. 반면, 직립 보행 덕분에 흉곽의 공기압으로 팔 근육을 지탱할 필요가 덜한 인간의 성대는 막성 구조에 가깝다. 막성 후두는 두툼한 후두에 비해 더 부드러운 소리를 낸다고 한다. 말과 음악은 다른 동물들과 다른 인간의 특징이지만, 그 근간이 되는 발성은 직립 보행에 따른 변화에 ‘얻어걸린’ 쪽에 가까웠던 셈이다.

■ 음악과 리듬감 있는 움직임

직립 보행이 발성에 유리한 해부학적인 조건을 제공하기는 했지만, 음악도 직립 보행에 도움을 주었으리라고 추론된다. 늘 두 발로 걷는 우리는 알지 못하지만, 2족 보행은 사실 대단한 능력이다. 한 발이 공중에 떠 있을 때도 절묘하게 무게중심을 이동해서 균형을 잡아야 하고, 울퉁불퉁한 땅에서 걷거나 심지어 달릴 때도 충격을 흡수할 수 있어야 한다. 발목, 무릎, 엉덩이뿐만 아니라 팔다리까지 리듬감있게 잘 움직여야 한다. 의족을 사용하시는 분들의 곤란함을 보면, 2족 보행이 얼마나 정교한 일인지 실감할 수 있다. 음악은 이처럼 리듬감 있는 움직임과 함께 진화했을지도 모른다고 한다. 올리버 색스의 책 <뮤지코필리아>에 따르면 신기하게도 인간은 박자와 리듬에 맞춰 자발적으로 움직이지만, 다른 영장류에게서는 이런 특징이 발견되지 않는다.

실제로 음악은 파킨슨병 환자들의 움직임을 도와주는 효과가 있다. 파킨슨병은 마치 얼어붙은 것처럼 움직임이 느려지고 뻣뻣해지는 질환이다. 연구에 따르면, 매일 30분씩 3주간 보행 훈련만 한 파킨슨병 환자는 보행이 거의 개선되지 않았으나, 규칙적인 박자를 들으면서 보행 훈련을 한 집단은 보행 속도가 25%, 보폭이 12%, 시간당 보행 수가 10% 더 좋아졌다고 한다. 하지만 훈련을 멈춘 뒤 향상되었던 능력이 서서히 사라졌다. 이 결과는 움직임과 규칙적인 리듬에 긴밀한 관련이 있음을 시사한다. 올리버 색스도 신경계 질환으로 움직이기 어려워지거나 조화롭게 움직이지 못했던 환자들이 음악을 듣거나 상상했을 때 더 수월하게 움직인 사례들을 소개했다.

■ 박자를 전하는 저음

그런데 음악에 맞춰 절로 몸을 움직이게 하는 소리는 따로 있다고 한다. 주로 고음보다는 저음에 박자를 타기가 쉽다. 그래서인지 여러 악기가 사용된 연주에서는 대개 저음 악기가 박자를 담당하고, 고음 악기가 가락을 담당한다.

이 현상을 좀 더 살펴보기 위해 사람들이 소리를 듣는 동안 뇌파를 측정한 연구가 있었다. 뇌파는 신경세포들의 전기적인 활동을 뇌 밖에서 측정한 것이다. 문이 닫힌 강당(뇌)에서 여러 사람(신경세포)이 북을 치는데 강당 밖에서 벽(두피)에 귀를 대고 소리를 듣는 상황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되겠다. 이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에게 들려준 박자와 일치하는 주파수의 뇌파가 강해지는 경향이 있었고, 이 경향은 소리가 고음일 때보다 저음일 때 더 두드러졌다고 한다. 이는 신경세포들의 활동이 어느 정도는 외부 소리에 맞춰졌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뇌파의 주파수가 고음보다 저음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현상은 당김음이 없을 때보다는 당김음이 있을 때 두드러졌다. 이는 당김음이 없는 단조로운 소리보다 당김음이 변화를 더하는 소리를 더 집중해서 듣기 때문으로 추론된다. 실제로 뇌파의 주파수가 고음보다 저음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현상은 사람들이 소리에 집중하지 않을 때는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가끔 예상을 어긋나는 소리가 더 재미있는 모양이다.

■ 함께 부르는 노래

좋아하는 노래를 혼자 들을 때도 좋지만, 여러 사람이 함께 노래하면 더 좋다. 침팬지처럼 오랜 시간 동안 서로 털고르기를 해주지 않아도, 공연장에 모인 수만명이 단숨에 일체감과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책 <노래하는 네안데르탈인>에서는 함께 노래를 부르는 활동이 사람들의 감정 상태를 비슷하게 만들고, 결속을 다지는 데 효과적이리라고 추론한다. 해질녘, 불가에 모여 앉은 집단 구성원들이 공동의 노래를 부르다가 하나둘씩 잠에 들었을지도 모른다고. 언젠가는 남쪽과 북쪽에서 따로 부르던 노래도 평화롭게 둘러앉아 함께 부를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송민령 | 카이스트 바이오 및 뇌공학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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