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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판에 차돌박이를 굽노라면 화강암에 점점이 줄줄이 박힌 차돌(석영)과 ‘인왕산 차돌을 씹어 먹더라도 처가살이는 안 한다’는 속담이 떠오릅니다(직업병이지요). 이 속담은 자존심 상하고 불편해 처가살이는 남자가 할 게 아니라는 말과, 그럼에도 오죽하면 처가살이를 하겠냐 자조하는, 두 가지 뜻을 가집니다(경복궁 서쪽에 있는 인왕산은 바위산이고, 그 바위는 우리나라에 흔한 화강암입니다).
이 속담은 분명 조선 후기에 생겨났을 겁니다. 왜냐하면 조선 중기까지는 오히려 처가살이가 흔했으니까요. 이순신 장군도 처가살이 하면서 처가의 돈으로 무과 준비를 했고, 신사임당도 거의 친정살이를 했습니다. 당연히 그 남편은 강릉에서 처가살이를 했고요(사임당의 아버지는 처가살이가 가능한지를 보고 사윗감을 골랐다고 하죠).
그러다 임진·병자 연이은 전쟁을 겪으며 국토는 쑥대밭이 되고 양반들 위신은 추락합니다. 그래서 이를 회복하고자 유교체제를 더 강화하고 그 목적으로 중국 풍습들을 잔뜩 따라합니다. 중국처럼 여자는 시집에 와서 살아야 한다고 강권한 것도 이때부터지요. 그 대신 혼례를 처가에서 올리고 거기서 사흘 밤을 자는 걸로 사위가 장가들어 살던 걸 흉내만 냅니다. 그렇게 ‘장가가다’가 ‘시집가다’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곡식이 떨어져 당장 굶어 죽을 판입니다. 처가는 형편이 좀 나아 고개 숙이고 들어가면 딸자식이고 사위니 내치진 않을 겁니다. 하지만 명색이 남잔데, 곧 죽어도 그리는 못하겠다고 버티는 상황이 그려집니다. 남자로서 차마 고개 숙이지 못할 마지막 자존심도 있겠지요. 하지만 자존심이 밥 먹여줘? 멸시와 굴욕을 차돌처럼 씹어 삼키며 연신 예예 합니다. 자존심 버리고도 당연한 듯 생색내지 않는 이는 ‘가족이란 진짜 자존심’을 묵묵히 지켜내는 사람입니다.
<김승용 | <우리말 절대지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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