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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문회 때마다 어김없이 드러나는 다운계약서, 불분명한 재산 증가, 전관예우, 탈세 같은 소위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부정부패는 이미 연중 행사가 된 듯하다. 그때마다 많은 국민들이 분노하고 실망을 표현하기도 하는데 사실 이러한 지도층의 부정부패가 우리에게만 국한되는 일은 아니다.
급속히 경제가 발전했거나 혹은 발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신흥국가들은 공통적으로 지도층의 부정부패와 관련된 문제들을 안고 있는데, 이러한 지도층의 범죄는 행위가 은밀히 이루어지고 범죄자가 강한 권력과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적발과 처벌이 쉽지 않다.
이에 부정부패로 고통을 겪고 있는 몇몇 국가들은 기존의 법만으로는 부정부패의 효율적 처벌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매우 급진적인 방법을 선택하기도 하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지도층이 부정부패를 저질렀다고 의심될 경우 무죄추정의 원칙에 예외를 두는 것이다.
무죄추정의 원칙이란 범죄자로 확정되기 이전에는 무죄로 추정되어야 한다는 것으로 국가 기관이 범죄행위에 대한 충분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할 경우 피의자는 처벌받지 않는다. 이는 프랑스 ‘인권선언’에서 시작한 근대 인권법의 기본원칙이라 할 수 있으며 우리 역시 헌법에서 이를 보장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를 비롯한 일반적인 국가에서는 지도층의 부정부패가 의심될 경우 무죄추정의 원칙에 의해 국가 기관이 부정부패의 증거를 수집하고 법정에서 이를 증명해야 하는데 그사이 범죄의 은닉 혹은 외압 등이 발생할 소지가 생기게 된다. 반면 무죄추정에 대한 예외를 허용한 국가들의 경우 부정부패가 의심되는 지도층이 자신의 결백을 증명할 책임을 지므로 국가 기관이 입증의 부담을 덜게 되고 결과적으로 효율적인 부정부패의 방지가 가능할 수 있다.
역대 정권의 권력형 비리는 권력무상을 불렀다. 어느 정권이든 비리와 부정부패 척결 의지는 용두사미였다. 첫 정치자금 비리로 기록된 이승만 정권의 ‘대선 중석불 사건’을 시작으로 직전 이명박 정권의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아랫줄 가운데)과 천신일 세모그룹 전 회장(최 전 위원장 오른쪽)까지 권력의 등잔 밑은 늘 어두웠다. (출처 : 경향DB)
인도네시아는 부패범죄말소법을 제정해 정치인의 재산이 소득에 비해 과도하게 많을 경우 정치인 스스로 본인의 재산이 부정부패의 산물이 아님을 증명해야 된다. 홍콩, 보츠와나, 그리스, 케냐 등도 유사한 법을 제정해 시행 중이다. 국제사회 역시 이러한 국가들의 노력을 인정하고 있는 추세이다. 일례로 국제반부패회의(IACC)는 제8차 회의에서 이러한 법이 제한적인 상황에 쓰일 경우 보편적 인권을 침해하지 않으며 부정부패를 없애기 위해 국가는 수사기관에 가능한 모든 법적 조력을 해야 함을 천명했다.
물론 우리의 경우 위의 국가들과 상황이 동일하지는 않을 것이다. 또한 외국의 법령을 철저한 검증 없이 적용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그 법이 헌법이 보장한 가치와 연관될 경우에는 더욱 신중해야 된다.
그러나 부정부패와 싸우고 있는 국가들이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만은 적지 않다고 본다. 한국이 국제사회의 노력에서 교훈을 얻기 바란다.
안광민 | 법무법인 천고 미국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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