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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얼마 전 진위 논란을 겪어온 고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에 대해 진품이라고 결론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논란이 사그라들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유족 측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고 유족 측 의뢰로 감정을 진행한 프랑스 ‘뤼미에르 감정팀’은 한국으로 날아와 검찰의 결론을 조목조목 반박하는 기자회견까지 열었다.

미술품 위작 시비는 현대 미술시장에서 운명처럼 따라다니는 주제이다. 위조는 미술품 거래가격의 폭등과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경제학적 관점에서 위조는 시장수요에 대한 왜곡된 응답이라고 보는 것이 논리적일 것이다. 미술작품의 화폐적 가치는 두 가지 요소에 의존하는데, 미학적 가치와 유명작가성이 그것이다. 이 요소들은 바로 해당 작품을 희소재로 만들어내는데, 작가가 사망한 다음에는 더욱더 그 특성이 강화된다.

미술시장에서 거래되는 위작품의 범위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지만, 유럽 법집행 당국은 국제미술시장에서 거래되는 작품의 절반 이상이 위조품일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미국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관장을 지낸 토머스 호빙조차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 작품 40%는 위작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고 천경자 화백의 유족과 ‘미인도’를 감정한 프랑스 뤼미에르 테크놀로지가 27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연 ‘검찰 발표에 대한 반박 및 감정보고서 설명회’ 기자회견에서 장 페니코 뤼미에르 테크놀로지 소장이 감정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이러한 위작품의 난무는 거래시장 참여자의 불안을 야기하기 때문에 미술품 거래의 신뢰성 유지를 위해서는 정확하고 믿을 만한 미술감정제도가 필수적이다. 미술품 위작 감정에는 크게 3가지 방법이 동원된다. 과학적 분석, 출처조사, 안목감정이 그것이다.

포렌식 기법은 기술의 발전에 따라 진보하고 있는데, 실제 활용되는 기술로는 라만 현미분광기, 엑스레이 회절, 과학적 사진법, 방사성탄소연령 측정법, 열발광선량법, 지문분석 방법 등이다. 사진 이미지의 픽셀 구성에 기초하여 그림을 통계적으로 검사하기 위해서 도수분포도를 이용하기도 한다.       

출처조사는 해당 작품 소유권의 역사를 거래기록, 카탈로그 등을 통해 증명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안목감정은 ‘안목감정인’의 경험, 안목, 육감 등에 의존하는 것이다.

미인도의 진위 감정 공방을 보면서, 우리나라도 미술시장의 외형적 성장에 상응하는 감정시스템이 시급히 확립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미인도 위작 논란은 원작자가 자신의 작품이 아니라고 선언함으로써 촉발되었다. 원작자가 원작이 아니라고 주장한다면 기본적으로 출처에 현저한 흠결이 생긴 사안이다. 이를 뒤집으려면 위작이 아니라 진작이라고 주장하는 측이 매우 설득력 있는 증거를 제시해야 하는데, 미인도의 경우 그렇지 못한 측면이 많은 것 같다. 우선 이 작품은 김재규 소장품이었다고 하는데, 이는 국립현대미술관으로 넘어오는 출처의 확인에 불과하다. 원작가로부터 출발하는 연결고리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과학적 분석과 관련해서는 뤼미에르 감정팀이 제시한 위작 근거를 진작임을 주장하는 측에서 압도적으로 반박해야 하는데 그것도 시원치 않은 것 같다. 무엇보다 진작이라는 감정 결론에 신빙성을 부여하지 못하는 이유로 9명 안목감정인의 실체와 그 감정 근거가 자세히 공개되지 않았다는 점도 있다.

네덜란드에 본부를 둔 미술법 전문가 그룹의 미술감정 가이드라인은 감정인 적격성, 의견을 형성하는 데 고려한 정보, 분석에 사용한 방법, 최종 결론, 결론의 확실성 정도 등을 감정의견서에 기재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미인도의 경우 어떠한 감정인이 어떠한 자료를 바탕으로 어떠한 방법을 적용하여 어느 정도의 확신을 가진 결론을 내렸는지 공개되고 있지 않다.

이러한 감정 방식으로는 시장의 신뢰를 얻을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안목감정은 다소 육감에 의존하고 그러한 이유로 논리적으로 근거를 설명하기 어려운 측면이 없지 않지만 아예 감정인이 누구인지도 밝히지 않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 그러한 이유로 미인도는 검찰의 결론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사건으로 볼 수밖에 없다.

최승수 | 법무법인 지평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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