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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

[여적]이인화와 류철균

opinionX 2017. 1. 3. 10:49

본명 류철균, 필명 이인화. 그는 평론을 발표할 땐 본명을, 소설을 내놓을 땐 필명을 썼다. 문단에 먼저 나온 것은 평론가 류철균이었다. 서울대 국어국문학과에 재학 중이던 1988년 본명 류철균으로 계간 ‘문학과사회’에 양귀자 소설 평론을 발표하며 데뷔했다. 하지만 평론가 류철균은 문단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가 유명해진 것은 염상섭의 소설 <만세전>의 주인공 이름에서 따온 이인화(二人化)라는 필명으로 1992년 소설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를 발표하면서부터다. 제1회 작가세계 문학상을 받은 이 소설의 평론을 본명 류철균 명의로 쓰는 이른바 ‘셀프 평론’으로 화제가 됐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상실의 시대> 등을 표절했다는 지적도 받았다. 당시 그는 “실재와 모방의 경계를 무너뜨린 ‘패스티시(혼성모방)’와 패러디 기법으로 쓴 작품”이라며 “문단의 혹평과 힐난은 ‘마녀사냥’과 흡사하다”고 강변했다.

정유라 이화여대 재학 당시 정 씨의 대리 시험 등 학사 특혜를 준 의혹으로 긴급체포된 류철균(필명 이인화) 교수가 지난 1일 오후 서울 강남구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사무실로 소환되고 있다. 이석우 기자 foto0307@kyunghyang.com

소설가 이인화를 베스트셀러 작가의 반열에 올려놓은 작품은 1993년 선보인 <영원한 제국>이다.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을 모티브로 조선 22번째 임금 정조의 독살설을 다룬 <영원한 제국>은 100만부 넘게 팔려나갔고,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하지만 “왕권을 강화하려는 정조와 신권정치를 주장하는 노론 사이에서 왕권정치의 편을 드는 역사의식을 드러냈다”는 문단의 혹평을 받기도 했다. 박사 학위를 받기 전인 1995년 이화여대 교수가 된 그는 1997년 발표한 소설 <인간의 길>에서 독재자 박정희를 ‘난세의 영웅’으로 묘사하고, 국가주의를 지지해 독자들의 거센 비판을 받았다.

노골적인 ‘박정희 찬양가’를 불러서였을까. 교수 류철균은 박근혜 정부에서 문화융성위원회 위원, 청년희망재단 초대 이사 등을 지내며 ‘제2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하지만 비선실세 최순실의 딸 정유라에게 학점 취득 특혜를 준 혐의로 긴급체포돼 영어의 몸이 될 처지에 놓였다. 교수 류철균의 ‘날개 없는’ 추락이다.

소설가 이인화가 발표한 작품 제목처럼 독재자 박정희가 간 길은 <인간의 길>이 아니었고, 세상에 <영원한 제국>은 없으며,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에 답해야 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 아닐까.

박구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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