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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밝았다. 이즈음 많은 사람들은 새해 소망을 빌며 각자의 다짐이나 계획을 세운다. 2017년만큼은 많은 국민이 공유하는 공통된 바람이 있을 것 같다. 연말까지 10차 촛불집회에 나온 국민이 1000만명이라니, 그들의 새해 소망 목록에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촉발된 탄핵정국이 하루속히 결론 나고 “이게 나라냐”는 얘기가 또다시 나오지 않도록 우리 사회의 뒤틀린 민주주의를 바로잡는 것이 하나쯤은 들어있지 않을까?

사실 나는 새해 소망이나 다짐을 잘 하지 않는 편이다. 그런데 올해만큼은 너무 간절하다. 정말 세상이 확 바뀌면 좋겠다. 단순히 대통령 한 사람 교체되는 것이 아니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통해 드러난 우리 사회 민주주의 시스템의 총체적 문제, 그 민낯을 성찰하고 근본부터 바꿀 수 있기를 소망한다.

나의 또 다른 새해 소망은 우리 사회에 ‘왜’라는 질문이 더 많이 생겨나고, 이를 성찰하고 수용할 수 있는 품이 있었으면 좋겠다. 프랑스 이민자 부부의 인터뷰 글을 보니 프랑스 사람들은 ‘왜’를 진짜 많이 따진다고 한다. 그래서 사소한 것이라도 그냥 되는 건 하나도 없단다. 회사든 일상생활이든 불합리하다고 느끼면서 꾹 참는 것은 없다. 다 따져서 결정되는 것만 한다고 한다. 만약 우리 사회도 그랬다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같은 일은 일어날 수 없지 않았을까?

제도나 시스템은 그 자체로 민주적인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본래의 가치 그대로 적용될 때 민주적인 제도가 되는 것이다. 지하철 손잡이를 잡고 있는 사람에게는 질문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손잡이를 잡을 수 없는 사람은 ‘저 손잡이는 왜 있는 걸까?’라고 질문할 수 있다. 신호등의 보행신호 안에 길을 건널 수 있는 사람은 질문할 게 없다. 건너다 중간에 신호가 바뀐 경험을 한 장애인이나 노인, 어린이만이 ‘왜 이리 짧은가?’를 질문할 수 있다. 입사면접에서 입사 포부가 아닌 ‘결혼 계획 있나? 출산 계획은?’이라는 질문만 받은 여성은 ‘왜 이따위 면접을 보는가?’를 질문할 수 있다.

질문은 불합리하거나 부조리하다고 느끼는 순간, 어떤 제도가 누군가에게 불리하게 작용하는 순간 시작된다. 그러나 그동안 우리 사회는 이런 질문에 인색했다. 질문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았다. 대를 위해 소가, 국가를 위해 개인이 희생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했고, 당연한 것을 질문하는 사람은 까다롭고 예민한 사람일 뿐이었다.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질문하는 사람들에게조차 ‘교통사고일 뿐인데 왜 난리들이냐’며 유난스러운 사람으로 취급했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질문은 또한 진지한 성찰의 순간에 시작된다. 말을 잘 안 듣는 아이 때문에 힘들어하던 부모가 ‘왜 아이가 말을 잘 들어야 하지?’라고 질문하는 순간 아이와 부모의 관계에 대한 성찰은 시작된다. 하라면 하고 억울해도 참을 줄 아는 것이 조직생활이라고 여기던 회사에서 ‘일방적인 소통이 무엇을 이롭게 하지?’라고 질문하는 순간 조직문화에 대한 성찰이 시작될 수 있다. 우리 사회의 헌법 질서, 헌법적 가치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이고, 어떻게 구현할 수 있을지를 질문할 때 민주주의는 한층 더 성장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2017년에는 우리 사회에 더 많은 질문이 넘쳐나기를 바란다. 더 많은 질문이 가능하고 그 질문을 통해서 성찰하고 변화할 수 있는 사회가 바로 진짜 민주주의 사회이기 때문이다.

김민문정 | 한국여성민우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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