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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고약저(老高若低). 일본의 고도성장을 이끌었던 단카이 세대(1947~1949년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의 정년퇴임이 몇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고령층 창업은 크게 느는 데 반해 청년층 창업은 계속 줄어드는 현상을 가리켜 나온 말이다. 일본사회는 단카이 세대 은퇴로 자국 경제의 연로화와 숙련기술 단절을 우려해 대비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고용시장의 노고약저 현상에 대해 걱정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재취업 등 장년층 고용률이 전체 고용률을 웃도는 반면 청년층의 고용률은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세대간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청년실업에 대해 접근을 달리할 필요가 있다.

요즘 숙련기술계에 눈에 띄는 변화가 생겼다. 장년층에서 기술자격증을 취득하는 이들이 부쩍 늘고 있다. 한국산업인력공단의 ‘기술자격 통계연보’를 보면 지난 5년간 10~30대는 취득률이 꾸준히 줄어들고 있지만 50세부터 계속 증가하고 있다. 취득률 증가세가 가장 가파른 연령대는 베이비부머 세대(55~63년생)를 포함한 50~59세로 최근 5년간 4639명에서 9658명으로 두 배 이상 늘었다.

직업훈련기관 등에서 진행하는 숙련기술 자격취득 과정도 장년층의 지원 열기가 뜨겁다. 60대 이상이 선호하는 기술자격증은 조경기능사로 서울 북부기술교육원은 수업을 해마다 한두 개씩 늘려가고 있지만 수강신청 경쟁률이 4 대 1선에서 떨어지지 않고 있다고 한다. 은퇴자뿐 아니라 퇴근 후 교육을 받으러 오는 50대 직장인 수강생들도 많아져 지난해부터는 야간반이 신설됐다.

얼마 전 막을 내린 제49회 전국기능경기대회 현장에서도 이색적인 광경을 목격했다. 청년 선수들이 대부분이던 대회장에 머리가 희끗한 장년층 출전자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전국기능경기대회는 지역별 대회에서 금·은·동메달을 수상한 숙련기술인들이 모여 기량을 겨루는 대회로 1~2위를 해야 만 22세까지 출전 가능한 국제기능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에 참여할 수 있다. 그런데 최근 3년간 올림픽 참가 여부와 관계없이 자신의 기술력을 인정받고자 전국기능경기대회에 참가하는 60세 이상 선수들이 매년 두 배 이상씩 늘고 있다.

장년층의 숙련기술 도전 열기에 발맞춰 기업들도 변화하고 있다. 특히 중소기업들은 상시적인 구인난과 숙련기술 단절의 난제를 풀기 위해 하나둘씩 정년을 폐지하기 시작했다. 또 중소기업들이 일·학습 병행제를 채택해 장년층의 기술과 노하우를 다음 세대를 이끌어갈 청년층에게 전수하고 있다.

서울 마포구 상암동 중소기업DMC타워에서 열린 ‘인생 2모작 설계 중장년 일자리 박람회’를 찾은 한 구직자가 구직신청서를 살펴보며 자신에게 맞는 일자리를 살펴보고 있다. (출처 : 경향DB)


하지만 안타깝게도 청년들의 인식은 조금 다른 것 같다. 최근 한 조사에서 청년층들이 일·학습 병행제에 참여하고 싶지 않은 이유로 60%가 ‘학력이 중요하고 대학졸업장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기술에는 정년이 없다는 말은 스펙에 시달려온 청년들에게 먼 나라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결국 청년의 인식 변화는 학벌과 스펙에 대한 기성세대의 생각이 바뀌는 데서 시작될 것이다. 청년실업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그들에게 적성에 맞는 직업을 택할 수 있는 자유와 열심히 노력한 만큼 대우받을 수 있는 공정사회를 물려주려는 기성세대의 노력이 먼저 있어야 한다.


류병현 | 동구기업 대표이사·기능한국인 제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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