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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어제 100여명의 조직원을 둔 사상 최대 규모의 보이스피싱 조직을 적발했다고 발표했다. 보이스피싱은 전화로 상대방 금융정보를 빼낸 뒤 돈을 인출하거나 싼 이자로 대출해주겠다고 속여 수수료 명목으로 돈을 가로채는 수법을 말한다. 사기 피해자는 확인된 사람만 2만여명에 달하고 전체 피해 금액이 400억원으로 추산된다고 한다. 사이버범죄 수사를 전담했던 전직 경찰이 자신의 ‘주특기’를 악용해 금융사기를 총괄 기획했다고 하니 충격을 금할 수 없다.

이번 사기의 피해자는 주로 서민들이다. 애초 담보나 신용도가 낮아 금융권에서 거절당한 대출 희망자들의 명단을 불법으로 입수한 뒤 사기극에 악용했기 때문이다. 개인정보를 속속들이 알고 있는 데다 싼 이자에 금방이라도 대출이 가능한 것처럼 속였으니 다급한 서민들은 당할 수밖에 없었다. 이들은 가짜 은행직원 신분증에다 정부의 피해 방지 매뉴얼까지 입수한 뒤 범죄에 역이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각종 수수료나 보증보험료, 인지대, 신용조회 삭제비 명목으로 1억원 이상을 날린 피해자도 있다. 삶을 비관한 나머지 음독자살을 기도한 피해자도 있다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보이스피싱 사기 흐름도 (출처 : 경향DB)


더 가관인 것은 범죄조직의 총책이 전직 경찰 간부였다는 사실이다. 그는 서울경찰청에서 사이버범죄 수사를 맡았던 이 분야 전문가다. 자신이 직접 수사한 금융사기 전과자 3명도 범죄에 끌어들였다. 사기범 잡으라고 일을 맡겼더니 평소 알게 된 전문지식을 이용해 직접 사기단을 꾸린 것이다. 아무리 경찰의 도덕성이 땅에 떨어졌다고 한들 이보다 파렴치한 행위가 어디 있을까 싶다. 또 현직 경찰관은 돈을 받고 범죄 조직원의 수배 여부를 조회한 뒤 관련 정보를 알려줬다고 한다. 경찰과 금융사기 범죄조직이 한통속이 돼 놀아난 것이나 마찬가지다.

보이스피싱을 비롯한 전자금융 사기는 갈수록 지능화돼 그 피해가 늘고 있다. 지난 5년간 12만건에 피해 금액도 4000억원에 육박한다. 이번에 적발된 금융사기범 중 총책을 비롯한 50여명이 아직 도피 중이라고 한다. 검찰은 추적조사를 통해 잔당을 소탕하고 범죄수익을 몰수해 피해자들에게 돌려줘야 할 것이다. 금융사기는 당사자가 조심하면 충분히 막을 수 있는 범죄다. 의심스러운 전화나 e메일은 거들떠보지 않는 게 상책이다. 당국도 관련 업체·기관과 유기적인 공조체제를 구축해 애꿎은 서민들이 신종 금융사기에 당하지 않도록 제도적 보완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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