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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교문위)가 저작권 침해에 대한 형사처벌을 완화하기 위한 저작권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현행 저작권법은 사소한 저작권 침해가 있어도 단 한번의 행위만으로 형사처벌의 대상이 된다고 규정하고 있어서, 청소년들의 경미한 실수에 대해 형사고소가 남발되고 과도한 합의금이 강요되는 폐해를 만들어 왔다. 이러한 폐해를 시정하기 위해, 이번에 국회 교문위가 마련한 개정안은 6개월간 침해 저작물의 총 소매가격이 100만원 이상인 경우에 한해 형사처벌을 하는 것으로 규정했다. 이번 개정 작업은 수만명의 청소년 이용자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만드는 현행법의 불합리한 규정을 시정하는 것으로 환영할 일이다.

개정안은 관련 시장에도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다 줄 것으로 기대된다. 인터넷상에서 음악 등 콘텐츠를 감상하는 주된 소비자들이 청소년이라는 점을 감안해보면, 지나치게 엄격한 형사처벌은 저작물의 주요 소비자들을 시장에서 쫓아내고 오히려 저작권 시장을 위축시키는 불합리한 결과를 초래해 왔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형사처벌의 완화는 한국음악저작권협회와 같은 저작권단체에 대한 소비자들의 신뢰를 회복시켜 주고, 온라인 유통업자의 기술 개발과 투자를 활성화시켜 줌으로써 궁극적으로 선순환의 저작권 생태계를 만드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저작권 보호의 강화를 주장하는 미국을 보면, 저작권 침해에 관한 소송이 빈번히 제기되고 침해로 인한 손해배상액도 수십억원을 넘는 사건들이 비일비재하지만, 저작권 침해에 대한 형사적 처벌은 일정 규모 이상의 무단복제를 한 경우로 한정하고 있고 현실적으로 형사처벌은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저작권 침해 규모나 사건 수는 상대적으로 미미하지만 형사고소나 형사처벌은 미국의 경우보다 훨씬 많다. 우리나라의 저작권법은 저작권 보호라는 미명하에 범죄자를 마구 만들어내고 있는 셈이다.

만화영화 <심슨 가족>의 등장인물인 호머 심슨이 동네 사람들을 모아놓고 자신의 집 뒷마당에서 개봉 영화를 상영하고 있다. 호머는 즐거워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공유와 나눔’을 실천했다고 기뻐했으나 곧 저작권법 위반으로 체포되는 신세가 된다. (출처 : 경향DB)


미국과 한국에서 형사처벌의 차이는 청소년들의 저작권 침해뿐만 아니라 온라인 유통사업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우리나라에서는 초기에 온라인 음악 유통을 시작한 소리바다 운영자가 이용자들의 저작권 침해에 대해 형사처벌까지 받게 되었다. 그러나 미국의 유사한 음악파일 공유사이트 ‘냅스터(Napster)’에 대해서는 형사처벌을 위한 공소가 제기된 바 없고, 오직 민사사건에서 냅스터의 저작권 침해가 인정된다고 판시된 바 있을 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형사처벌에 관한 규정도 엄격하지만 그 해석과 운용도 아주 엄격하고 경직되어 있어서, 저작물 이용과 온라인 유통사업을 위축시키는 것 아닌가 반문이 제기되어 왔다.

요컨대 저작권 침해를 모두 형사적으로 처벌하려 하는 것은 형사처벌의 위협에 의해서만 법집행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후진적인 사고방식의 결과이고, 불필요한 형사처벌의 위협에 의해 생기는 반감은 오히려 저작권법의 집행을 방해할 뿐이다. 특히 미래의 온라인 콘텐츠 유통방식으로 자리 잡게 될 인터넷 기술을 개발하는 사람이나 기업에 대한 형사처벌은 우리 문화산업 발전의 원동력이 될 정보기술의 발전을 위축시킨다. 인터넷 시대의 죄와 벌은 명확하고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기준으로 적용될 때에만 행위규범으로 기능할 수 있다.

형사처벌 규정을 합리적으로 완화하기 위해 이번에 마련된 개정안으로 저작권자와 이용자 그리고 온라인 유통사업자 모두 상생하고 문화산업이 발전하게 되길 바란다.


정상조 |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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