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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참 병사의 가혹행위로 숨진 윤모 일병 사건을 계기로 병영 문화를 바꾸자며 국방부가 설치한 민·관·군 병영문화혁신위원회 전체회의가 어제 열렸다. 그러나 이 회의가 병영 문화 개선의 성과를 내리라는 기대감은 높지 않다. 무엇보다 국방부가 그동안 병영 문화를 바꿀 수 있는 제도 개혁에 부정적 태도를 견지해왔기 때문이다. 국방부와 군 수뇌부가 결단을 내리지 않는 한 회의를 열고 토론을 한다고 해서 별로 달라질 것 같지 않다.

병영을 바꿀 수 있을지 판가름할 핵심 제도는 두 가지, 군 사법제도 개혁과 국회 옴부즈맨 제도이다. 현재의 군 사법제도는 군 지휘관의 부하인 법무장교가 검사·판사역을 맡고, 지휘관이 감형 등 재량권을 행사하도록 되어 있다. 민주적 절차가 결여된 이런 군 사법체계에서 엄정하고 객관적인 심판을 할 수 없는 건 당연하다. 병영 내 문제가 생기면 지휘관이 자기 책임을 피하기 위해, 혹은 문제 간부를 보호하기 위해 얼마든지 은폐·조작하거나 재판에 간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가혹행위로 실형선고를 내린 경우가 극히 드물었고, 2010~2013년 가혹행위에 연루된 간부가 실형선고를 받은 경우는 한 차례도 없었다.

국방부 백승주 차관(오른쪽)과 박대섭 인사복지실장(오른쪽에서 두번째), 김유근 육군참모차장(세번째) 등이 20일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병영문화 개선 관련 현안보고를 하기 위해 자리에 앉은 채 기다리고 있다. _ 연합뉴스


이런 비합리성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군사법원·검찰을 지휘관의 통제 밖에 둬야 한다. 그러나 군은 지휘권을 훼손한다며 반대하고 있다. 군은 국회에 병영 내 인권침해를 조사할 수 있는 옴부즈맨을 두자는 국회 옴부즈맨 제도도 거부하고 있다. 군은 지휘권 약화, 군 정보 유출, 국민권익위원회·국가인권위원회와의 기능 중복을 이유로 들고 있다. 그러나 군정보 유출은 방지 장치를 도입하면 된다. 그리고 제 역할을 못하는 국민권익위·인권위 핑계를 대는 건 너무 군색하다.

병영 내 가혹행위가 근절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군대의 폐쇄성에 있다. 병영 깊숙이 일어나는 일을 외부가 전혀 알 수 없는 ‘닫혀 있는 병영’에서는 야만이 고개를 들기 때문이다. 게다가 군인은 사회로부터 격리된 노예가 아니다. 그들은 제복 입은 시민이다. 이 사회가 민주주의 체제라면 군인 역시 민주적 시민으로서의 인권을 보장받아야 한다. 그렇게 민주화된 군대의 건강함이 있어야 강한 군대, 강한 규율도 가능하다. 병영을 민주적 절차와 가치의 예외지대로 두겠다는 군 수뇌부의 사고는 군사독재의 잔재이다. 군 지휘관은 어떤 근거로도 민주주의·인권을 벗어난 예외적 권력을 행사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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