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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국 교육계에 큰 파장을 일으킨 발표가 있었다. 미국의 100대 명문 사립고등학교가 성적증명서에 기존의 과목명과 성적을 빼고 핵심 역량 성취도를 중심으로 표기하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는 것이다. 미국 내 아이비리그를 포함한 명문 대학 신입생의 대부분이 이들 100대 명문 사립고등학교 출신이기 때문에 미국 고등학교에서 새로운 역량 중심 성적증명서가 도입되면 곧 대학의 입학 사정 방식에도 변화가 생길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교육 전문지 ‘인사이드 하이어 에드(Inside Higher Ed)’가 지난해 5월 보도한 바에 따르면, 새로운 역량 중심 성적증명서에는 분석적·창의적 사고능력, 복합적 의사소통, 리더십과 팀워크, 디지털·양적 리터러시, 세계적 시각, 적응력·진취성·모험정신, 진실성과 윤리적 의사 결정, 마음의 습관 등 8대 핵심 역량을 바탕으로 학생들을 평가한 내용이 기록된다. 영어·수학·과학 등 수업에서 받은 성적을 표기하는 정량적 평가 방식은 지양하고 각 핵심 역량별로 개별 학생들의 성취도와 숙련도를 표기하는 정성적 평가 방식을 적용한다는 것으로, 다가오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적합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변화다.

미국의 공립고등학교들도 학생 개개인의 핵심 역량을 강화해 21세기형 인재로 양성하기 위한 계획을 앞다퉈 발표하고 있다. 미국 내에서도 전통적으로 교육 수준이 높은 버지니아주의 고등학교 3곳은 지난해 2월, 2018년도 신입생부터 ‘하이스쿨 2022’ 프로그램을 신설해 적용한다고 발표했다. 이 프로그램의 주목적은 고등학교에서 개인 맞춤형 학습을 실현하는 것이다. 학생들은 자신의 학습 목표에 맞춰 수강할 과목과 과외활동을 정하고 개별 일정에 맞춰 등교와 하교를 하게 된다. 또한 영어와 과학, 수학과 사회 등 몇 개 과목을 연계해 융합한 학제 간 수업들도 들을 수 있게 된다.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주의 한 고등학교는 이미 2년 전부터 150여명의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개인 맞춤형 학습 프로그램을 시범 운영해 왔으며 지난해 9월부터는 전체 신입생을 대상으로 개인 맞춤형 학습 프로그램을 확대 실시하고 있다. 신입생을 맡은 교사들은 학생 개개인의 장점과 선호에 따라 개인 맞춤형 학습을 진행할 수 있도록 교육을 받았고 커리큘럼도 학생들이 개인의 관심과 흥미를 찾고 추구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 새롭게 구성됐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런 미국 고등학교의 다양한 변화의 중심은 바로 학생이라는 점이다. 이들의 변화는 대학입시 정책의 변화에 맞추기 위한 것도 아니고 더 좋은 대학에 보다 많은 학생들을 입학시키기 위한 것도 아니다. 학생 개개인이 새로운 시대에 잘 적응하고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개인의 역량을 강화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

한국에서도 얼마 전 교육계에 큰 파장을 일으킨 발표가 있었다. 2021학년도 수능 절대평가 도입안과 학생부종합전형 평가요소 가운데 자기소개서와 교사추천서를 축소·폐지할 계획이란 교육부의 발표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두 가지 계획 어디에도 학생이 중심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교육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연계해 한 국가와 그 구성원들의 미래를 준비하는 복합적이고 중대한 사안이기 때문에 어떤 정책이나 제안도 완벽할 수는 없다. 앞에 소개한 미국 고등학교의 변화도 현실적으로 실행되고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성적평가 제도나 학사운영 방식 변화에 앞서 여러 과제들을 해결해야 한다.

하지만, 교육의 중심에 학생이 있고 아이들의 보다 나은 미래를 논의하고 고민하는 과정 속에 나온 이런 변화와 시도는 분명 의미있는 움직임이 될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의 도래를 처음 세상에 알린 세계경제포럼이 지난해 발표한 ‘일자리의 미래(The Future of Jobs)’ 보고서에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인재들에게 요구되는 10대 핵심 역량이 나와 있다. 

순위로 보면, 복합문제 해결능력, 비판적 사고능력, 창의력, 인적자원 관리능력, 협업능력, 감성능력, 판단 및 의사결정 능력, 서비스 지향성, 협상능력, 인지적 유연력 등이다. 

우리나라와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 교육계가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4차 산업혁명이란 새로운 시대는 점점 빠른 속도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지금 우리가 무엇에 중점을 두고 어떤 변화와 시도를 할 것인지 정하는 바에 따라 우리의 미래는 크게 달라질 것이다.

<류태호 미국 버지니아주립대 평생교육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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