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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자체로서 나쁜 것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것이 나쁜 경우 대개 그것은 그것이 너무 적거나 많은 데서 비롯된다. 그 자체로서 나쁜 게 아니라 너무 과소하거나 과대해서 나쁠 뿐이다. 입시교육만 해도 그렇다. 그것도 사실 따지고 보면 너무 과도해서 문제인 것이지 적절하다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다. 심지어 주입식·암기식 교육도 너무 지나쳐서 문제인 것이지 적절하다면 오히려 좋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적절한 수준을 맞추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지루하고 고단한 과정을 거쳐야 겨우 그 근처에 다가갈 수 있다. 또한 적절함에 대한 탐색은 인간의 영혼을 매료시키지 않는다. 인간의 영혼을 자극하는 것은 대개 과소함이나 과대함으로의 편향이다.

최근 교사 사회에선 교사의 정치적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는 법률 조항들에 대한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국민이 훨씬 많을 것이다. 나는 그분들께 이런 질문을 드리고 싶다. 교사의 정치적 자유와 권리에 대한 제한은 과연 ‘적절한’ 정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가?

투표 행위 외에 교사의 정치적 활동은 사실상 모든 게 금지다. 정당 가입만 금지된 게 아니다. 일반 국민에게 문호가 개방된 국민경선 같은 정당 활동의 참여도 금지다. 심지어는 정치후원금을 내는 행위조차 금지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정치후원금에 대해 세상을 더 좋게 가꾸는 소금과 같은 돈이라 했다. 그러나 교사에게는 그러한 돈을 정당과 정치인에게 보낼 자유와 권리가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다.

교사는 교사직을 버리지 않고는 공직선거에 나설 수가 없는데, 국회의원이나 자치단체장이나 자치단체 의원 선거에만 그런 게 아니다. 초·중·고 학교교육을 관할하는 교육감 선거에도 나설 수 없다. 대학교육을 담당하는 교수는 교수직을 유지하며 교육감 선거에 나설 수 있지만, 초·중·고 교육을 담당하는 교사들은 교사직을 버려야만 그렇게 할 수 있다. 대학교수는 자신이 지지하는 교육감 후보를 위해 정치적 활동을 할 수 있지만, 교사는 지지하는 교육감 후보가 있어도 아무런 정치적 활동을 할 수가 없다. 다른 선거도 아닌 초·중·고 교육을 관할하는 교육감 선거인데 말이다.

이것을 적절한 수준의 제한으로 보긴 어렵다. 헌법에 보장된 권리인 종교의 자유에 비추어 생각해 보자. 종교의 자유가 있다 해도 교사들은 학교에서 특정 종교에 대한 신앙을 학생들에게 설교할 자유가 없다. 엄하게 금지됐다. 교사들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금지다. 그러나 교사들도 학교 밖에선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고 자신의 종교를 남에게 권유할 수 있다. 교사의 정치적 행위에 대한 제한도 이와 같아야 하지 않을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선진국에 비추어 생각해 보자. OECD 국가들은 교사의 정치적 자유와 권리를 우리보다 폭넓게 인정하고 있다. 제한을 해도 우리에 비해 그 정도가 훨씬 약하다.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모두 마찬가지다. 독일의 경우엔 교사의 정치적 활동을 오히려 적극 권장하는 듯한 느낌이다. 우리도 이들 나라와 같아야 하지 않을까?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일반 국민의 정치적 자유와 권리는 물론 교사의 정치적 자유와 권리 또한 온전히 보장되어야 한다. 설사 자유와 권리를 제한한다 하더라도 ‘적절한’ 정도에 그쳐야 한다. 적절함이 올바름이다.

<이기정 | 서울 미양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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