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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8월 말 박근혜 정부가 ‘화물운송시장 발전방안’을 발표했다. 정부 방안은 화물운송사업법을 개정해 소형 화물차의 무한 증차를 유도하는 것이다. 또한 톤급별 구분을 없애 증톤을 가능하게 한다. 이렇게 되면 전체 화물시장 내 경쟁이 심화될 것이다. 결국 정부는 있지도 않은 문제를 해결한다며 나서 공공의 이익에 더 큰 문제를 일으킨 것이다. 한국 화물운송시장은 이미 경쟁이 심각하다. 예컨대 한국교통연구원 화물운송시장정보센터에서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2014년 용달(1t 이하) 화물차 운전자의 평균 월 노동시간은 257.6시간, 월 순수입은 96만원으로 시간당 임금이 3728원, 즉 그 해 최저임금(5210원)보다 약 30% 적었다.

컨테이너와 같은 대형차 운전자는 순수입이 조금 더 높지만 화물을 싣기 전에 소요되는 대기 시간이 매우 길고 그에 따른 임금은 지급되지 않는다. 그 손실을 메워야 하는 화물노동자는 위험할 정도의 장시간 운행을 강요받는다. 여러 나라의 연구에서 증명됐듯이 화물노동자들의 장시간 운행으로 인한 피로는 끔찍한 화물차 사망 사고로 귀결된다. 미국에서는 노동조합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화물노동자들 역시 같은 문제를 겪는데 해마다 4000명 가까이 화물차 사고로 사망하는 주원인이 되고 있다. 무급 대기시간은 막대한 인적, 재정적 자원을 낭비한다.

정부의 '화물운송시장 발전방안' 폐기를 주장하며 총파업에 돌입한 화물연대 노조원들이 10일 경기도 의왕 내륙컨테이너기지(ICD)앞에서 파업출정식을 갖고 있다. 서성일 기자

화물차 사고의 피해자는 결국 일반 국민이다. 도로교통공단 교통사고분석에 따르면 2011년과 2014년 사이 한국에서 화물차 사고로 인한 사망자 수는 연평균 1146명이었다. 화물노동자의 고강도 노동을 유발하는 정부 정책으로 하루 3.2명이 죽는다. 화물차 사고의 피해에 따른 비용 역시 국민에게 전가된다. 유가족의 개인 고통에 더해 사회는 사망자의 평생 생산 능력과 수익 능력을 잃게 된다. 화물차 사고로 발생한 부상자의 치료비와 상실된 생산성에 따른 비용을 사회가 부담하는 데 반해, 화주는 화물노동자의 장기간 노동과 낮은 운임으로 비용을 절감해 수익을 높인다.

또한 경쟁 때문에 화물노동자들은 과적하지 않을 수 없다. 화주가 지급하는 운임의 일부만 받는 지입 화물노동자는 낮은 수익을 만회하기 위해 더 많은 화물을 운송해야 한다. 과적은 치명적인 화물차 사고를 야기할 뿐 아니라 국가가 지출하는 도로 유지·보수 비용에 추가적인 324억원을 납세자의 부담으로 지불하는 비효율성을 만든다. 요컨대 인명 피해 및 인프라와 자산 파괴를 부르는 저가 화물운송은 국민에게 막대한 비용을 전가한다.

수혜자인 화주는 누구인가? 한국 경제를 통제하는 대기업 재벌들이다. 국내 10대 재벌이 한국 경제의 85%를 통제한다. 이 정도 수준의 경제적 집중 덕분에 재벌은 이른바 ‘경제적 지대’를 얻을 수 있는데, 이것이 오히려 한국 경제가 비효율적이 되는 가장 큰 원인이다. ‘경제적 지대’란 일반 경쟁시장에서 얻을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높은 이윤을 뜻하며 자원이 낭비되고 혁신은 억눌리며 국가는 더 가난해지는 원인이다.

국부를 증진하고 도로안전을 지키려면 한국 정부는, 첫째 지입제를 폐지해야 한다. 지입제는 19세기 후반 미국에서 노예제도를 대체한 ‘채무 노예’(debt peon) 제도와 비슷한데 화물 차주를 노예에 가까운 계약노동자로 만든다. 국제노동기구(ILO)가 정하는 국제노동기준마저 위반하며 현대 경제에도 맞지 않은 제도다.

둘째, 한국은 재벌의 경제적 통제력을 대폭 축소해야 한다. 한국 경제의 취약성은 재벌의 지속적인 독점에서 유래한다. 국가 경제의 건전성에 재벌만큼 유독한 것이 없다. 모든 시장경제는 독점에 따른 비효율성을 경험한다. 그런데 한국 재벌의 경제적 권력은 압도적이어서 국민들에게 큰 부담을 전가한다. 국가의 번영을 위협하는 것은, 평소 운송업무를 직접하고 지금 최소한의 권리와 국민의 안전을 요구하며 파업에 돌입한 화물노동자가 아니라, 바로 화물운송시장을 통제하는 재벌이다.

마이클 벨저 웨인주립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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