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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10일 이일영 교수가 경향신문에 칼럼 ‘양국체제인가, 한반도 체제인가’를 올렸다. 양국체제도 한반도 체제이니 이 제목은 이상하다. 이 교수는 양국체제론과 분단체제론, 두 개의 ‘이론’을 말하고 그 둘의 병립을 제안하는 듯하다. 그러나 필자는 양국체제와 분단체제, 두 개의 ‘현실’을 말해왔다. 이 둘은 병립할 수 없다. 선택해야 한다.
분단체제에서는 한반도 두 국가의 존재, 두 국가의 평화 공존이 허락되지 않는다. 분단체제에서 남북은 서로를 부정한다. 모두 자기중심으로 통일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남은 ‘북진통일(흡수통일)’을, 북은 ‘조국통일(적화통일)’을 부르짖어 왔다. 상대가 자신을 부정하는 이상, 그러한 상대와는 생사를 걸고 싸울 수밖에 없다. 그것이 한국전쟁(Korean War)이었다.
그러나 1991년 이래 유엔은 한반도 남쪽에 ‘대한민국(ROK)’, 그리고 북쪽에 ‘조선(DPRK)’이라는 두 개의 국가가 존재함을 인정하고 있다. 유엔헌장은 가입국 모두가 상호 영토와 주권을 인정함을 명시하고 있다. 또한 세계 157개국이 남과 북 두 나라와 동시 수교하고 있다(‘2016 외교백서’). 유엔에서도 세계 대다수 나라에서도 태극기와 인공기가 동시에 걸려 있다. 분단체제 신봉자들은 이 엄연한 현실을 외면하고 부정한다.
평창 올림픽이 좋은 예를 보여주고 있다. 평화제전인 평창 올림픽에서 북측(DPRK) 선수단과 응원단이 자신의 국기인 인공기를 들고나오는 것에 극도의 거부감을 보이고 있는 쪽이 어디인가? 연초 벽두부터 어린이가 그린 ‘통일 나무’ 그림에 인공기가 (태극기와 함께) 등장했다고, 그래서 대한민국이 부정되었다고, 황당한 히스테리를 부린 이들은 또 과연 누구였던가?
이미 노태우 전 대통령 시기인 1991년 탁구와 청소년 축구에서 남북 단일팀이 성사되었다. 이후 남북이 한반도기를 들고 공동 입장한 대회는 9차례에 이른다. 이 11차례의 국제대회에서 남북은 각자의 국기인 태극기와 인공기를 들고 각자의 팀을 열심히 응원했다. 남에서는 북이 다른 국가와 경기하면 북을 응원했고, 북에서는 남이 다른 국가와 경기하면 남을 응원했다. 이것이 한반도기를 함께 든 취지였다. ‘한반도 두 국가 간의 특수한 관계’, 이것이 한반도 양국체제의 국제법적 성격을 집약한다. 남북 양국의 국기를 각자 들면서 또한 서로 동의하는 경우에는 한반도기를 함께 드는 것이다.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과 2003년 대구 하계유니버시아드에서도 꼭 마찬가지였다. 태극기와 인공기가 대한민국 하늘 아래 자연스럽게 같이 걸렸다. 대한민국의 부정? 거꾸로 그때 남북 간의 긴장과 위기는 한국전쟁 이래 가장 약해졌고, 세계 여론에서 대한민국의 국격은 가장 높아졌다. 양국체제란 이렇듯 남북 두 나라의 평화적 공존상태를 안정적인 체제로 만들자는 것이다.
분단체제 신봉자들은 이 모든 사실들을 없었던 일로 부정하고 싶어 한다. 이들은 1991년 남북 유엔 동시 가입 이전, 더 나아가 1987년 민주화 이전으로 돌아가자고 외치는 역사의 퇴행 세력이다. 영화 <1987>에 등장했던 남영동의 그 가공할 실존 인물, 박처원과 꼭 같은 사고를 여전히 품고 있는 자들이다.
세계 여론은 3차 세계대전의 발화점이 될지도 모를 한반도 전쟁의 가능성을 진정으로 우려했다. 누가 김정은-트럼프 간의 막가는 치킨게임을 일시적이나마 중단시켜 대화의 물꼬를 텄는가? 결국은 성숙한 대한민국 촛불시민들의 힘이다. 외신들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 이번 평창 올림픽에서 나타난 대화 기조는 평화를 바라는 대한민국 민의의 승리라고.
대한민국의 촛불민의는 평창 올림픽에서의 한반도기 그리고 태극기와 인공기의 동시 등장을 따듯하게 환영한다. 이로써 남북 간 대화와 화해의 물꼬가 트이고, 더 나아가 북이 바라는 북·미수교, 북·일수교에 대한민국이 적극적인 역할을 하는 계기가 마련되기 바란다. 우리가 이미 중국, 러시아와 수교하고 있는 것처럼, 미국과 일본이 북을 인정하고 수교하게 되면, 한반도 양국체제는 안정 궤도에 접어든다. 그럴 때 북의 비핵화도 현실화될 수 있다. 이것이 한반도 평화만이 아니라 세계평화를 위한 대한민국의 역할이다.
<김상준 | 경희대 공공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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