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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고, 갈 수가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그리고 별빛이 그 길을 훤히 밝혀주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이것은 루카치의 <소설의 이론> 첫 구절이다. 1990년 1월1일 <광장으로 가는 길>이 신춘문예에 뽑혀 소설가가 된 뒤 나는 일기의 첫 문장을 새기듯 이 문장들을 되뇌었다. 당시 나는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뒤편 내자동 현대빌딩에 있는 월간 문예지 ‘문학사상’에 입사한 햇병아리 기자였다. 지하철 3호선이 막 개통되어 경복궁역과 회사 빌딩이 지하로 연결되었고, 나는 일요일을 제외한 매일 이 역을 통해 출퇴근을 했는가 하면, 수시로 외근을 나갔다. 회사로 연결되는 통로 반대쪽은 경복궁으로 통했다.

나는 가끔 점심 식사 후에 경복궁역 건너 청운동사무소를 방향으로 내처 걷거나, 경복궁을 가로질러 사간동 옛 프랑스문화원 도서실에 가거나, 경복궁 뜰 한쪽 동종(銅鐘)이 있는 잔디밭에 누워 하늘을 올려다보고 오곤 했다. 퇴근길에 이 경복궁역에서 함께 지하철을 타고 간 소설가도 있고, 이 경복궁역에서 전화를 걸고 올라온 시인도 있다. 그들 중 요절한 기형도 시인이 있다. 그는 11월 특집호에 실릴 시 ‘바람의 집-겨울版畵1’과 ‘삼촌의 죽음-겨울版畵4’를 가슴에 품고 와 건네주었다. 일간지 문화부 기자였던 그는 내가 건네준 자판기 종이커피를 복도에서 마신 뒤, 지하철을 타러 경복궁역으로 내려갔다. 이듬해 봄 그는 세상을 떠났고, 나는 평소처럼 매일 경복궁역을 들고 나면서도 한동안 “내 유년 시절 바람이 문풍지를 더듬던 동지의 밤이면”으로 시작하는 ‘바람의 집’을 읊조리거나, “밤을 하얗게 새우며 생철 실로폰을 두드리던 기억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로 끝나는 ‘삼촌의 죽음’을 음송하곤 했다.

지난 주말 100만 촛불이 타오른 경복궁역, 내자동, 광화문 일대는 내가 이십대를 보낸 젊음의 성소(聖所)이자 작가로서의 출발지다. <광장으로 가는 길>은 바로 경복궁역과 연결된 내자동 현대빌딩에서 광화문을 거쳐 신촌에 있는 대학 민주광장으로 향하는 한 젊은 직장여성의 행로를 담고 있다. 이때 대학 민주광장은 지난 주말 거대한 촛불의 대열에 처음 불을 붙였던 이화여대 광장이고, 시점은 1987년 6월10일이다. 나를 비롯해 그날 광장을 꽉 채운 학생들은 분노로 가슴이 터질 듯했지만, 또래인 이한열 학생의 목숨을 빼앗아 간 최루탄과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불안과 두려움으로 죽을 것 같았다.

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고 갈 수 있고,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었던 시대로부터 우리는 얼마나 멀리 떠나왔는가. 1987년 6월 광장의 함성과 행진이 차마 되돌아보기 아득한 시절의 삽화가 되어버렸나 했는데, 마치 어제 일인 양, 아니 지금 이 순간 직면한 미증유의 부조리 현실 속에 끊임없이 되살아나고 있다. 우리는 지난 주말 별보다 강한 촛불이 어둠을 밝히고 길을 안내하는 경이로운 현장을 체험했다. 그 길은 한 번도 간 적 없는 길이지만, 갈 수 있고, 가야만 한다. 두 눈 부릅뜨고, 촛불 모아, 정의의 길, 끝까지.

함정임 | 소설가·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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