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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원전 1호기에서 사고가 난다면 기존의 원전 사고와 전혀 다른 형태의 원전 사고가 발생할 것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원자력계에서는 다시는 그런 사고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일본과 우리나라는 다른 모델이라면서 애써 안심시키려 했다. 전 세계 원자력계는 체르노빌 원전 사고 이후로 안전장치 보강으로 원전 사고는 다시 일어나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그런 ‘안전신화’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로 완전히 깨졌다. 기술이 발달한 선진국으로서 원전 설계의 원천기술을 가지고 있고 까다로운 규제요건을 가지고 있었으며 우리나라보다 낮은 이용률로 안전점검기간이 더 길었던 나라에서 발생한 사고였다.

사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전에 이미 원전 부지를 침수시키는 쓰나미가 발생할 것을 경고하는 학자들이 있었고 핵연료봉이 녹아서 발생하는 수소로 폭발할 수도 있다는 경고 역시 있었다. 하지만 확률적으로 낮은 가능성 때문에 간과되었다. 첨단 기술을 이용한 평가방법에 의하면 2011년에 발생한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1억년에 한 번 일어날 사고였다.

고리원전 1호기에 대해서도 전혀 새로운 경고가 있다. 바로 핵연료봉이 있는 원자로, 핵분열이 일어나는 원자로가 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핵분열이 일어나는 원자로 압력용기는 원전의 핵심이다. 150기압의 고압과 320도를 넘는 고온을 견뎌야 하기 때문에 ‘압력용기’라고 불린다. 고리원전 1호기의 이 원자로 압력용기가 유리처럼 깨어질 수 있을 만큼 취약한 상태로 가동 중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환경단체 회원들이 원전 반대와 해양·수산물 방사능 오염 경고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원전에 수명이 있는 이유 중의 하나는 핵분열할 때 나오는 중성자선을 쪼인 원자로 강철이 유리처럼 성질이 변하는 온도가 계속 높아지기 때문이다. 어느 인기 있는 만화영화에서 여왕은 무엇이든 얼려버리는 마법을 가지고 있었다. 두 손을 묶어둔 수갑도 얼려버리니 간단히 깨져버렸다. 그렇다. 강철은 영하 수십도에서 유리처럼 약해져서 외부 충격에 쉽게 깨진다. 그런데 중성자선을 쬔 원자로 압력용기는 영하 수십도가 아니라 실온에서도 이렇게 유리처럼 취약해지는 것이다. 유리처럼 약해진 상태에서는 급격한 온도 변화에서도 깨진다. 뜨거운 유리잔에 찬물을 갑자기 끼얹으면 깨져버리는 것과 같은 현상이 상온의 강철 원자로 압력용기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고리원전 1호기의 원자로 압력용기는 가동하기 전에는 유리처럼 취약해지는 온도가 영하 23도였다. 그런데 가동한 지 1년 만에 82도로 급증하더니 마지막으로 측정한 1999년에는 107도까지 올라갔다. 원자로 압력용기는 고온 고압 상태인데 비상시에 냉각수를 급하게 흘려보낼 경우에는 만약에 내부에 균열이 있다면 균열을 중심으로 깨어질 것이다. 높은 압력 차이로 인해 깨어질 때 발생하는 파편은 총알보다 빠르게 주변으로 튈 것이고 그런 파편으로 인해 원자로 격납용기 안의 증기발생기, 배관 등의 기기와 설비들이 크게 훼손될 것이다. 파괴된 원자로 내에 있는 핵연료봉은 바닥으로 쏟아져내리면서 냉각이 불가능해지게 될 것이다. 그 다음은 어떤 일이 발생할지 상상하기 어렵다. 고리원전 1호기 원자로 상태는 너무나 심각해서 비상시가 아닌, 원전을 가동하거나 중지시킬 때도 급격한 온도 변화가 있으면 깨질 수 있을 정도라는 것이 관련 데이터를 본 일본 전문가들의 증언이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 이후로 안전 기준이 강화되었고 안전구조물, 안전장치가 보강됐다. 폭발적인 핵분열 반응이 일어나지 않도록 핵연료봉이 설계되었고 원자로 압력용기를 둘러싸는 3~5㎝의 강철 격납용기가 덧대어졌다. 하지만 후쿠시마에서는 전원이 끊기면서 냉각에 실패하자 핵연료봉은 간단히 녹아내렸고 격납용기는 물론 1.2m 두께의 철근 콘크리트도 무참히 파괴되는 폭발이 일어났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원자력계는 쓰나미로 인해 전기가 끊기는 것만 열심히 보강하고 있다. 하지만 다음 원전 사고는 전혀 새로운 형태로 일어날 것이다. 고리원전 1호기가 그중의 하나가 되어서는 안된다. 기다리지 말고 바로 폐쇄해야 한다. 원전은 안전할 때 꺼야 한다. 사고가 난 뒤에는 이미 너무 늦어버릴 것이다.


양이원영 | 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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