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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거래위원회가 그제 호남고속철도 입찰 과정에 담합을 한 건설회사 28곳에 4355억원의 과징금 처분을 내렸다. 역대 건설사 과징금 중 최고 액수라고 한다. 현대·대우·GS건설과 삼성물산 같은 내로라하는 회사들이 모두 입찰 비리에 연루된 것으로 드러났다. 3조5000억원의 공사비를 사다리 타기로 나눠 먹었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공공사업의 입찰담합은 국민세금과 직결된 문제다. 하루가 멀다 하고 불거지는 담합 비리를 언제까지 방치할 건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호남고속철에 대한 공정위 조사 결과를 보면 대형 국책사업이 담합에 얼마나 취약한지를 단적으로 엿볼 수 있다. 8조3500억원짜리 공사는 건설사들의 놀이터나 다름없었다. 7개 대형 건설사들은 입찰이 시작되자 뽑기 방식으로 알짜 공사구간을 나눠 먹었다. 떨어진 업체는 낙찰가를 일부러 높게 적어 들러리를 서는 방식이다. 한 푼의 공사비라도 아끼려는 정부의 최저가 입찰은 무용지물로 전락했다. 낙찰자와 낙찰가가 모두 건설사의 수중에 놀아났으니 건설사들 입장에서는 땅 짚고 헤엄치기나 마찬가지다.

올 들어 적발된 입찰담합만 5건이다. 4대강 사업과 경인운하, 인천·대구도시철도 같은 대형사업은 모두 짬짜미의 희생양이 됐다. 지난 2년간 1조원의 과징금이 부과됐지만 달라진 건 거의 없다. 건설사 사장단은 모임을 갖고 “과도한 정부의 제재로 회사가 거덜나게 생겼다”며 선처를 호소했다. 상습적으로 국민세금을 축낸 것에 대한 진솔한 반성도 없이 죽는시늉만 하는 게 아닌지 모를 일이다. 정부 대응은 더 걱정이다. 노대래 공정위원장은 “담합 적발 시 입찰자격을 제한하는 현행 규정을 개선하도록 요청하겠다”고 밝혔다. 경기 활성화도 좋지만 정부에 근절 의지가 있는지조차 의심스럽다.

올해 적발된 건설사 주요 입찰 담합 사건 (출처 : 경향DB)

그간 수차례에 걸쳐 정부 대책이 나왔지만 여전히 속수무책이다. 보다 근원적인 처방이 필요한 시점이다. 최대 2년간 공공사업 입찰을 제한하는 규정은 실효성이 문제다. 법원 확정판결을 기다리느라 부지하세월이다. 공정위의 과징금 처분과 함께 입찰제한이 이뤄지도록 관련 규정을 바꿀 필요가 있다. 담합에 가담한 실무자만 처벌받는 관행도 바로잡아야 한다. 건설사 담합은 일개 사업부서의 문제가 아니라 업계의 고질적인 병폐다. 이를 바로잡으려면 회사 대표에게 보다 실질적인 책임을 묻는 게 옳다. 지금의 꼬리 자르기식 처벌로는 달콤한 담합의 유혹을 뿌리 뽑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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